'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눈빛이 너무 좋아.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 땜에 내일은 행복할 거야. 얼굴도 아니, 멋도 아니 아니, 부드러운 사랑만이 필요했어요. 지나간 세월 모두 잊어버리게. 당신 없인 아무것도 이젠 할 수 없어. 사랑밖엔 난 몰라.'-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
팍팍한 '삶'에다 몰랑몰랑한 모음 하나만 덧붙이면 곧장 '사람'이 된다. 다시 받침을 둥글게 구부리면, 이윽고 '사랑'으로 다소곳이 일어선다. 사람살이에서 사랑이 곧바로 밥 먹여 주지야 않겠지만, 사랑 없이 삼켜야 하는 밥은 퍽이나 까끌까끌할 것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사랑 없인 아무것도 이젠 할 수 없는 사람들.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사랑 때문에, 내일은 꼭 행복하리라는 바람과 다짐은 그래서 서럽고, 또 아름답다.
'와이키키 브라더스'(Waikiki Brothers, 2001)는 막다른 길목에서 조금씩, 조금씩 무너지고 흩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와이키키의 황홀한 해변을 꿈꾸며 마냥 노래하던 천둥벌거숭이 시절에서, 변두리 와이키키 회관의 무대를 그냥 그렇게 버텨가는 을씨년스러운 풍경으로 흘러 흘러간다. 어릴 적 함께 음악을 하였던, 이제는 삶에 널브러져 버린 옛 친구가 쓴 술잔을 앞에 두고서 묻는다. "그래도 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아가는 친구는 너 뿐이잖아. 하고 싶은 것 하고 사니 행복하니?" 사는 게 역시 만만치가 않더라. 한순간 너무도 좋았던 눈빛을 간직하며 살아가기엔 더더욱 숨이 찬다고, 차마 토해 놓지는 못한다.
등줄기가 식은땀으로 젖을수록, 가슴속 더운 꿈도 야금야금 말라버리더라. 아무리 되돌아보아도 언제 떠나왔고, 어디서 어떻게 헤어졌는지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아픔과 슬픔은 벼락 치듯이 불쑥 찾아오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시나브로 젖어들고 또 그렇게 무너지는 일이더라. 주춤주춤 뒤돌아보며, 절룩절룩 걸어온 발길들이 함께 머문 곳, 이윽고 끊겼던 노래가 다시 이어진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정호승의 '봄길' 중에서
한때 푸르렀던 용을 그리다가 꼬랑지마저 떠나보내고,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뱀 대가리와 함께 새 아침이 밝아왔다. 결국 용이 되지 못할 이무기의 아득한 꿈이라도 다시 꾸어볼 일이다. 겨울길마저 끝난 곳, 스스로 봄길이 되어서 씩씩하게 함께 걸어갈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리고 삶이 있단다. 그래, 다시 바람이 분다. 참 열심히 사랑하고, 또 살아봐야겠다.
송광익 늘푸른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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