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집중 인터뷰] '술탄과 황제' 집필 김형오

입력 2013-01-18 07:27:38

前국회의장의 소설 출간 '한국의 다빈치코드' 도전

"아마 저자의 이름을 가리고 읽는다면 어느 젊은 작가가 쓴 실험소설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만큼 역사적인 주제의식을 참신한 문체와 다양한 형식 속에 용해하고 있다. 3중 구조의 '액자소설'을 연상케 하는 새로운 기법은 정치계와 학계, 그리고 문단에 만만찮은 충격을 줄 것 같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묘사한 소설 '술탄과 황제'에 대한 추천사의 한 부분이다.

지난 18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지낸 김형오(65) 전 의장이 4년여 간의 산고 끝에 400쪽이 넘는 스펙터클한 역사소설을 출간하는 믿지 못할 사건(?)이 벌어졌다. '술탄과 황제'는 소설의 형식임에도 1453년 5월 29일 비잔틴 제국 함락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들로 가득하다. 이 책은 출간 2개월여 만에 14쇄까지 팔렸다.

김 전 의장은 "만일 이 소설에서 팩트(fact)가 아닌 부분이 하나라도 발견되거나 재미가 없다면 책임지겠다"며 스토리는 물론이고 표현 하나하나까지 픽션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 전 의장은 5년 전 대통령직 인수위 부위원장으로 사실상 인수위를 이끌면서 이명박 정부의 골격을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번 인수위 출범에 앞서 첫 워크숍을 할 때 기조연설을 통해 지난 인수위 때의 시행착오와 경험 등에 대한 조언을 했다. 이와 관련, 그는 "지난 인수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모양"이라면서 "그때 인수위는 10년 만의 정권교체였는데다 총선을 코앞에 둔 인수위라서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소위 '실세'끼리 다투는 모양이 노출되면 MB가 나보고 나서라고 하는 등 아슬아슬한 시기가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김 전 의장이 '콘스탄티노플 함락'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주목하게 된 것은 4년 전인 2009년 1월 터키를 방문했을 당시 이스탄불 군사박물관에서 함대를 이끌고 가파른 갈라타 언덕을 넘어가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승산이 없는 싸움에서 끝까지 항복을 거부한 채 무너지는 제국과 함께 장렬히 산화한 비잔틴 제국 최후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때부터 콘스탄티노플 함락에 관한 책과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아마존닷컴을 통해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터키를 네 번 방문했고 또 따로 47일간 체류하면서 격전이 벌어진 현장을 직접 찾아 '시간여행'에도 나섰다.

5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국회의장까지 역임한 그가 지난해 총선 출마 여부를 고민하다가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 책을 쓰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이 책은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펼쳐진 동서문명과 술탄과 황제 리더십의 충돌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저자는 역사적으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콘스탄티노플 함락 과정을 고증을 통해 밝혀냈을 뿐만 아니라 황제의 비망록과 술탄의 일기라는 형식을 통해 동전의 양면 같은 두 영웅의 인간적 고뇌까지 생생하게 재현해냈다.

그가 책을 쓰겠다고 결심하게 된 데에는 시오노 나나미에 대한 환상이 깨진 것이 결정적이었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구해서 몇 시간 만에 다 읽었는데 쓰레기통에 책을 던져버리고 싶었다. 존경하던 시오노 나나미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 내가 구해서 읽은 책의 반의반도 읽지 않고 쓴 것 같았다. 로마인 이야기도 이런 식으로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주변 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당신이 한 번 써보라'는 대답이 되돌아왔다. 그 말에는 자료 좀 읽었다고 설마 책까지 쓸 수 있겠느냐는 비아냥거림이 담겨 있었다. 오기가 생겼다.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한번 써보겠다고 결심했다. 국회의장직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이스탄불로 날아가서 보름을 머물면서 최후의 전투현장인 성벽과 성소피아 성당을 찾아 그 역사속으로 들어갔다."

-'술탄과 황제'를 통해 던지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들의 리더십이 아니라 황제와 술탄의 내면과 갈등을 파헤치기 위해 엄청 고민했다. 정말이지 빙의 현상이라도 나타났으면 하고 바랐다. 비망록과 일기라는 소설적 장치를 도입한 것은 하나의 팩트를 동전의 양면처럼 각자 볼 수 있도록 엮은 것이다.

책을 쓰면서 무조건 재미있어야 하고 세계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그래서 허구가 아니라 내용 자체가 팩트여야 한다는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책을 펼치자마자 전쟁장면이 시작된다."

-술탄이 함대를 끌고 산을 넘었다는데 사실인가.

"우리 속담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한다. 배가 산으로 가는 것은 망한다는 의미인데 여기서는 배가 산으로 가서 역사를 만든 것이다. 21살밖에 안 된 술탄이 배를 끌고 61m의 갈라타 언덕을 넘었다.

그러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술탄을 도운 베네치아 상인이 이탈리아 바다에서 호수까지 배를 끌고 간 기록이 있는데 그것은 평지에서의 이동이었다. 또 옥타비우스가 이집트에 가서 클레오파트라를 격파하기 위해 배를 끌고 들어간 기록도 있다.

나는 술탄이 존경하는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로 쳐들어갈 때 인더스강을 건너 배를 분해해서 쳐들어간 역사적 사실을 모를 리 없다고 가정해서 알렉산더 대왕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 전직 국회의장이 직접 이런 역사소설을 집필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정치를 하면 책다운 책을 못 낸다. 60대 중반으로 향하는 마당에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책에) 도전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5개월 동안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적이 없었다. 고시공부를 했다면 양대 고시를 패스했을 정도다.

대필(代筆)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 사건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 타이핑이 느려서 직접 쓰거나 녹음을 해서 비서진에게 넘기면 그것을 직접 고쳤다. 사실 한국문학의 지평을 넓히자, 세계와 경쟁하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세계 누구와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 한 권 내놓고 별소리를 다 한다는 소리를 들을지 모르지만 조용한 파문을 던지고 싶었다.

정치인과 학자, 소설가에게 나름대로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정치인들에게는 아름답게 뒤끝을 장식하자. 꼭 책을 쓰라는 것이 아니라 열정을 쏟을 분야를 찾으라는 것이다. 학자들에게는 '좀 쉽게 쓰라'는 메시지다. 학문의 대중화는 수준이나 내용을 낮추라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쓰라는 것이다. 우리 소설가도 다빈치코드같이 역사적 탐구에 바탕을 둔 소설을 써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8월에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이스탄불-경주 세계 문화엑스포에 도움을 주고 있다.

"지난주 경상북도 초청으로 가서 특강을 했다. 이스탄불 경주 엑스포에 정부도 관심을 가져야 된다. 김관용 경북지사를 만나니까 굉장한 열정이 있더라. 이런 것이 바로 지방자치단체가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세계는 이제 도시의 시대다. 이스탄불은 인구가 1천600만 명이나 되는 아시아와 유럽 문명을 공유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도시다. 이번에 이스탄불과 함께하는 경주 엑스포가 경주와 경북의 세계화 지평을 넓히는 좋은 계기가 됐으면 한다. 1년에 3천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이스탄불에서 경주를 알리는 것은 엄청난 의미가 있다. 경주는 대한민국 역사의 심장이다. 심장에서 펌프질을 강하게 해줘야 우리나라가 살아난다. 이스탄불에서 교류를 잘해서 거기서 10만 명이라도 경주를 찾아오면 성공이다."

-지난 인수위를 이끌었던 경험에 비춰 이번 인수위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인수위 워크숍에 가서 우리의 미래성장동력은 정보통신기술(ICT)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선 후보의 공약이라도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라고 했다. 이번 인수위가 과거와 달리 실무중심으로 한 것은 잘했다고 본다. 공약 점검을 하는 정도로 설정한 것이 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업무보고를 할 때 여러 대변인을 배치해서 흐름과 방향에 대해서는 중간중간 발표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그게 좀 아쉽다. 정치는 결과에 책임지는 것이다. 인수위에 대한 중간평가는 인수위 끝나면서 받고 마지막 평가는 5년 후 받게 된다. 역사인식을 갖고 (정치에) 임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국회에 대한 국민 시선이 최악이다. 특히 전직 국회의원에 대한 지원금도 논란이 됐다. 국회개혁이 가능한가.

"이번이 좋은 기회다. 우선 대통령 당선인이 국회의원으로 15년을 지내면서 성공했다. 그렇기 때문에 19대 국회는 오히려 희망이 있다. 17, 18대 국회를 거치면서 정치와 국회에 대한 국민 비난이 최고조에 달했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바닥이다.

반면 정치개혁에 대한 논의는 상당한 수준까지 진전돼 있다. 실행만 하면 된다. 다행히도 18대 국회 때까지 정치권을 장악한, 정치를 투쟁의 장으로 몰고 간 세력들이 퇴조하고 있다. '친노'와 시민단체, 그리고 충성심에 가득 차있던 여권 내 세력들도 세대 교체되고 있다.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상시국회를 하고 국정감사를 정기국회 이전에 상임위별로 하는 이 두 가지만 실천하면 된다. 상시국회는 매달 첫째 셋째 목요일 본회의를 열기로 하는 등 '캘린더 국회'를 법적으로 명문화하자는 것이다. 또 국정감사를 정기국회 전에 상임위별로 하면 벼락치기 국감이나 부실 국감이라는 말이 나올 수가 없다.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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