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광장] 나이 먹고 지혜 먹고

입력 2013-01-15 11:15:23

(상투적이지만) 새해가 밝았다. 연말 유행한 노로 바이러스 장염을 앓으며 맞이한 새해 첫날,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무엇이었을까. 아픈 와중에도 '또 한 살 먹었네'였다.

한 살을 먹기 전인 2012년, 내 일상의 변화 중 하나는 아침에 눈 뜨면 가장 먼저 화장실로 가서 거울을 보던 습관이 스마트폰을 보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사람이 스마트하니 스마트폰이 꼭 필요하랴'며 버티던 고집을 버린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스마트폰은 눈 떠서 가장 먼저 내 손길을 받는 그 무엇이 되었다. 그러나 (뭐 딱히 기대하진 않았지만) 발표 도구인 '파워포인트'가 '파워'나 '포인트'를 보장하지 않듯, 스마트폰 사용 자체가 나의 스마트함을 더 증진시켜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스마트 기기를 사용한 이래 두 번이나 잃어버리는 허망함을 경험했을 뿐이다. 잃어버려도 아쉬울 게 없던 피처폰(feature phone:스마트폰이 나오기 이전에 사용하던, 스마트폰이 아닌 저성능의 휴대폰을 일컫는다고 한다. 피처폰이라는 이름도 중학생 딸 아이 덕에 최근에야 알았다)은 7년 동안이나 잃어버린 적이 없는데 말이다.

2013년 새해, 나이 한 살을 더 먹으며,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스마트폰은 그렇다 치고, 나이 먹으면 지혜도 깊어진다던데, 난 과연 그럴까?" "어라? 나이 든다가 아니라 왜 나이 먹는다고 하지? 그 차이는 뭐지?" 궁금증이 시간이 갈수록 커져 갔다. "궁금해도 참기는 어려운 걸 보니 아직 젊은가" 하는 생각을 하며, 좀 더 궁리를 하였다. 궁금하면 습관처럼 '신속'정확'친절'을 자랑한다는 인터넷의 '네아무개' 씨에게 묻기보다는 이리저리 골똘히 생각하는 행위, 즉 궁리를 하였다.

궁즉통! '나이 들다'와 '나이 먹다'. '들다'와 '먹다'라는 동사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들다'는 내가 적극적으로 나이 많아지는 것에 임하는 게 아니라 비주체적 행위를 말하는 것이고, '먹는다'는 주체적 행위, 즉 살아가는 데 필수 행위를 나타내려고 하는 게 아닐까. 아니야, '들다'도 '진지 들다'에서처럼 '먹다'라는 주체성을 드러내는 말이 아닐까. 나이가 한 살 두 살 많아지는 것에 푸념하며 이끌려 가지 말고, 적극적으로 먹어 삶을 풍성히 하라는 의미는 아닐까. 나이가 많으면 지혜도 깊어지게,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게 아닐까. 나이와 지혜가 정비례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던데…. 나이 먹고 지혜 먹고, 그러려면 어떻게 하면 되지?

나를 중심에 두고 말할 때는 '나이 먹는다'고 주로 쓰는 반면에 타인에게 또는 일반적으로 사용할 때는 '나이 든다'고 하는 경향이 있는 듯한데, 이것도 앞서 말한 주체성과 관련이 있는 걸까.

나 스스로 궁리를 충분히 하였으니, 알려진 지식이나 타자의 생각을 알아볼 차례.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고 알아낸 사실들이다 ▷'나이(를) 먹다', '나이(가) 들다'와 같이 쓴다 ▷'먹다'라는 동사의 뜻 중 '일정한 나이에 이르거나 나이를 더하다', '들다'라는 동사의 뜻 중 '빛, 볕, 물 따위가 안으로 들어오다'가 있다. 그러니 '나이 들다'는 '나이가 (내)안으로 들어와 나이가 많아지다'로 보면 되겠다.

386, 486, 586…. 숫자가 커질수록 컴퓨터는 업그레이드되고 새로워진다. 숫자가 커질수록 사람은 피처폰이 되고 낡아지며 익숙함에 물들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제 나이를 능동적으로 '먹는' 나는 오히려 더 낯섦을 대면할 수 있는 담대한 용기를 뿜어내려 한다. '원래 (세상은) 그런 거야'라는 익숙함을 낯설게 바라보려는 용기를 내고자 한다. 나이만 먹는 게 아니라, 지혜도 같이 먹고 싶기 때문이다. 허투루 먹은 듯한 세월 속에서도 나름의 삶의 고통을 먹으며 성장하는 맛을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존재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그 구조가 나를 먹지 않게, 나이가 나를 먹지 않게, 적어도 노력은 하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인생 공부를 놓치지 않으려 하였기 때문이다.

나이 먹고 지혜 먹고! 팍팍한 사람들이 더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세계화 시대에 나이가 나를 먹지 않고, 내가 나이 먹고 지혜 먹으려면 혼자서도 공부하고 여럿이서도 공부할 수밖에.

김성아/예방의학 전문의·사단법인 더나은세상을위한 공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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