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미첼 바첼렛 전 칠레 대통령이 역할 모델 지도자로 거론됐다. 같은 여성 지도자인 대처와 바첼렛이 긍정적인 업적을 많이 남겼기 때문이다. 대처보다는 바첼렛이 더 바람직한 모델로 여겨진다. 대처는 강력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쳐 만연한 노사분규와 경제의 비효율성 등 '영국병'을 고쳤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대처 시절의 영국과는 반대로 신자유주의 정책이 낳은 양극화의 폐해를 치유해야 하는 상황이다. 강력한 지도력보다는 갈등을 조정하는 소통의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박 당선인은 비슷한 점이 있는 대처보다는 바첼렛을 더 참고할 필요가 있다. 바첼렛은 좌'우 대립이 극심했던 칠레의 통합에 노력, 성과를 거둔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바첼렛보다 더 확실한 역할 모델은 룰라 다 실바 전 브라질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룰라는 박 당선인과 여러 모로 대비되지만, 박 당선인이 가야 할 길을 성공적으로 걸어갔던 지도자였다. 룰라는 가난한 선반공 출신의 좌파 지도자로 최고 권좌에 올라 대통령의 딸로 태어나 보수 정당의 지도자로 우뚝 선 박 당선인과는 출신 배경과 정치 노선 면에서 확연히 다르다. 그런 룰라가 대통령이 되자 빈민들은 환호하고 부자들은 불안에 휩싸였다. 하지만, 룰라는 예상과 달리 신자유주의 정책을 채택,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부자들을 안심시키며 브라질 경제의 고속 성장을 이끌었다. 한편으로 룰라는 빈민들의 굶주림을 해결하고 생활을 향상시키려고 '기아 제로' 정책과 '보우사 파밀리아' 정책을 추진, 빈민층을 대폭 줄이고 중산층을 크게 늘렸다.
룰라가 실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첫 임기 중 측근들을 관리하지 못해 터진 대형 부정부패 사건이 브라질 정국을 강타했다. 룰라는 오점이 묻었지만 '성장'과 '분배'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빈민 지원 정책을 확대하자 부유층과 반대자들로부터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비난받았으나 그들을 끈질기게 설득, 관철했다. 룰라는 결국 지지층뿐만 아니라 반대층까지 포용하는 소통과 통합의 지도력을 잘 발휘해 성공한 지도자로 남았다.
룰라뿐만 아니라 남미에는 주목할 만한 지도자들이 적지 않다. 앞서 언급한 바첼렛을 포함해 바첼렛의 전임자인 리카르도 라고스 전 칠레 대통령, 룰라의 후임인 지우마 바나 후세피 브라질 대통령,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 등이 그들이다. 라고스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독재 정권 이후 집권한 사회주의자 대통령으로 국가 통합에 힘쓰면서 경제성장과 빈부 격차 해소에 노력했다. 후세피는 룰라 정부의 국무장관으로 부정부패 사건을 수습하고서 대통령이 되어 룰라의 노선을 잇고 있다. 무히카는 대통령궁을 마다하고 수도 외곽의 허름한 집에서 지내면서 월급의 90%를 기부하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알려졌다. 모두 도덕적 가치를 중요시하며 소통과 통합을 추구한 지도자들로 이 중 여성 대통령이 2명이나 된다. 남미 대륙은 과거 오랫동안 군부 독재와 부정부패로 얼룩져 구제불능일 것 같던 국가들의 총합체였으나 2000년대 이후 좋은 지도자들이 배출돼 국가의 변화와 발전을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박 당선인이 가야 할 길도 소통과 통합이다. 이를 잘 아는 박 당선인은 '국민 통합'과 '대탕평 인사', '경제 민주화'와 '국민 행복'을 강조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사명감이 투철해 보이며 통합과 소통에 대한 진정성도 느껴진다. 그러나 인수위원회 인사 등을 통해 나타난 행보는 평가를 유보하게 한다. 극우 성향의 인물을 기용하거나 '밀봉 인사'로 표현되는 인사 방식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박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은 많은 사람이 대선 결과에 절망감을 느꼈지만, 이제는 박 당선인의 성공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박 당선인을 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국민이 팍팍한 삶에서 벗어나길 바라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이 성공하려면 반대층까지 포용하는 국가 지도자로서 인식을 확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재를 기용하는 데 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하며 정책도 더 진취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경제 민주화와 국민 통합의 진정성을 가졌다 하더라도 정책이 그에 미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면 기대하는 결과를 거둘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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