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참사 10주년] <하>표류하는 재단 설립

입력 2013-01-10 11:21:44

상임이사제 등 사안마다 마찰…2년 넘도록 허송세월

192명이 숨지고 148명이 부상을 입은 초유의 지하철 참사가 벌어진 지 10년이 흘렀지만 아직 재단 출범을 두고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2
192명이 숨지고 148명이 부상을 입은 초유의 지하철 참사가 벌어진 지 10년이 흘렀지만 아직 재단 출범을 두고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2'18 대구지하철 참사 순간 한 승객이 촬영해 매일신문에 제공한 사진. 참사 당시 지하철 내부의 긴박했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매일신문은 19일 1면에 특종 보도했고, 다음날 전국 대부분의 일간지와 비중있는 외신들이 이 사진을 실었다. 매일신문 DB사진

2'18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지하철 참사를 기리기 위해 추진 중인 재단 설립이 표류하고 있다. 재단 설립은 2'18 참사를 계기로 안전 의식 고취 및 사회안전망 구축 등 안전과 관련한 각종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것. 하지만 재단 운영 주체를 둘러싸고 논란이 숙지지 않고 있다. 지하철 참사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유는 재단 설립이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표류하는 재단 설립

재단 설립이 확정된 것은 2003년 3월. 당시 보건복지부는 650억원에 이르는 국민 성금 배분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우선 사망자 유가족과 부상자들에게 특별위로금을 지급하도록 했고, 잔여 성금 중 일부를 추모공원 조성 및 추모사업을 위해 사용하도록 했다. 이 추모사업에 추모기념관 건립이나 재단 설립이 포함된 것.

하지만 재단 설립을 두고 대구시와 희생자 유가족 및 부상자대책위원회 등의 관계자들은 수년간 갑론을박을 거쳤고, 2010년 11월에야 가칭 '재단법인 2'18 안전문화재단' 설립을 확정했다.

출연금은 우선 75억원으로 확정했고, 향후 잔여 성금을 모두 재단으로 귀속시키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재단 출연금은 최대 95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 뒤 열린 재단발기인대회에 부상자 대표와 일부 희생자 유가족들이 불참하는 등 파행이 계속됐다.

이런 가운데 재단 이사장인 김태일 영남대 교수와 6명의 이사, 재단 설립에 찬성하는 희생자 유가족들은 절차상 문제가 없다며 발기인대회를 정상적으로 개최한 데 이어 2011년 1월 행정안전부에 재단 허가를 신청했다.

행안부는 하지만 같은 달 ▷부상자 대표 등도 이사진에 포함 ▷중립 인사로 이사회 재구성 ▷상임이사제 폐지 등 보완을 요구했다.

행안부는 같은 해 12월 30일 대구시가 출연증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단 허가 반려를 통보했다.

이로부터 다시 1년 남짓 지난 현재까지 여전히 아무런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재단 출범이 계속 표류하는 것과 관련, 대구시와 희생자 유가족 등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상임이사제'와 '부상자 대표 참여'

재단 출범이 표류하는 가장 큰 표면적인 이유는 상임이사직 신설에 있다. 재단 이사회는 2010년 12월 발기인 대회에서 정관을 확정하면서 상임이사직을 만들었고, 윤석기 희생자대책위원장을 선임했다.

당시 대구시는 상임이사직 대신 사무국장직을 두도록 했지만 유족들은 상임이사직을 밀어붙였다. 대구시는 상임이사가 상대적으로 고임금이고, 더욱이 지하철 참사 이후 희생자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동안 '강성' 이미지가 강한 윤 위원장이 상임이사가 되면 여러모로 분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또 일부 희생자 유족들도 윤 위원장이 상임이사를 맡는 것에 극력 반대하고 있다. 다만 대구시는 단임 등 임기를 제한한다면 윤 위원장의 상임이사 선임을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윤 위원장은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상임이사에 선임된 이상 포기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윤 위원장은 "추모사업위원회와 재단이사회 등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상임이사에 선임됐다. 대구시가 추모위 결정에 관여하는 것은 재단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행안부가 요구했던 보완 사항은 희생자들이 직접 행안부 담당자를 찾아가 문제를 풀었고,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는다. 하지만 대구시는 이미 해결된 문제를 꼬투리 삼아 출연증서를 발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상자 대표의 이사회 참여 문제도 논란이 되고 있다. 대구시는 행안부의 보완 요구를 들어 부상자 대표도 이사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희생자대책위 측은 '재단 설립은 추모사업의 일환이고 추모사업은 사망자들을 위한 사업'이라는 이유로 부상자 대표의 이사진 포함에 부정적이다.

부상자들은 재단 자체에 부정적이다. 이동우 부상자대책위원장은 "지하철 참사로 대구시민들이 죽고 다쳤다. 따라서 재단은 대구시민들을 위한 재단이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재단은 전국적인 사업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 참여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성금 중 일부를 호흡기 장애 등으로 후유증을 앓고 있는 부상자 검진 등에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대구시 관계자는 "재단은 유가족만 참여하는 기구가 아니고 부상자와 외부인사 등 모든 관계자가 참여해야 사고의 아픔과 갈등이 치유되고, 사회안전망 구축이라는 당초 재단 설립의 목적과 부합된다"며 "재단에 100억원 가까운 돈이 출연되는 만큼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시가 지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해결책은 없나

대구시'일부 희생자유가족 대 윤석기 희생자대책위원장 간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해결책 마련도 쉽지 않다. 재단 이사들도 중재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김태일 재단 이사장은 "결국 대구시와 윤 위원장 간 합의를 해야 하고, 대구시장 등 시의 수뇌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또 "안전에 대한 보편적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인사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는 재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사인 김경민 대구YMCA 사무총장은 "대구시가 재단 설립과 관련한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고 이사들이 진지하게 논의를 하면 해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인 강재형 대구시의원은 "행안부 안대로 보완을 하면 문제는 간단하다"며 "서로 양보 없이 감정싸움만 하다가 시간을 끌고 있다. 이사직에 회의마저 느낀다"고 했다.

기획취재팀=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