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기요미즈 절의 투신

입력 2013-01-09 11:21:40

일본말에 '기요미즈(淸水) 무대에서 뛰어내리는 심정으로'라는 표현이 있다. 뒤를 생각하지 않고 과감히 결행한다는 뜻으로, 에도 시대에 많은 사람이 교토에 있는 기요미즈 절 난간에서 투신했던 것이 그 유래다. 778년에 창건된 이 절은 연간 300만 명이 찾는 일본의 대표적인 절로, 1872년 메이지 정부가 금지령을 내릴 때까지 투신이 끊이지 않았다. 기록이 남아있는 1694년부터 1864년 사이에만 234건의 투신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기요미즈 절의 본당은 지면에서 15m 위에 있어 뛰어내릴 경우 죽을 수도 있다.(그러나 실제 생존율은 85.4%로 높은 편이다) 죽음을 각오한 투신의 이유는 '기요미즈의 관음보살에 목숨을 의탁하고 뛰어내려 살면 소원이 성취되고 죽더라도 성불한다'는 속설 때문이다. 일본인들의 일상적 정신세계에 침윤돼 있던 이런 무모함은 미국과의 전쟁이라는 국가의 운명 결정에도 결정적 추동력으로 작용했다.

개전에 앞서 일본이 자체 평가한 미일 생산력 격차는 강철 20대 1, 석유 100대 1, 석탄 10대 1, 항공기 5대 1, 선박 2대 1, 노동력 5대 1, 전체 10대 1이었다. 전쟁은 곧 명백한 자살행위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결행했다. 그 이유는 일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국의 영토를 계속 늘려가는 길밖에 없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본 군부 내 그 누구도 승리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길 수 없는 전쟁을 결행한 일본 군부의 정신세계는 어떤 것이었을까. 도조 히데키가 개전 두 달 전에 한 발언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인간은 때로는 기요미즈 절의 높이 솟은 언덕에서 과감히 뛰어내려야 한다."

작년 말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들에게 "종군위안부 강제 연행 사실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수정할 경우 구체적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아베 정권의 '막가파'식 우경화가 마침내 미국까지 불편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구체적 대응에는 항의 성명이 포함될 수도 있다고 하니 72년 전 개전을 앞둔 미일 관계를 연상케 할 만큼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아베 정권의 우경화가 주변국과의 관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명약관화하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그들에게서 기요미즈 절의 높이 솟은 언덕에서 과감히 뛰어내리는 무모함을 또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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