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에 감동한 백성들의 이임 선물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를 다시 찾았다. 조선 후기 올곧은 선비 서암(西巖) 여효증(呂孝曾)이 심은 측백나무(경북도 기념물 제49호)가 온전하게 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3년 전 처음 갔을 때 5가지 중 1개만 겨우 잎을 달고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666년(현종 7년) 충청도 임천군(지금의 부여군 임천'장암'세도'충화'양화면 일대)의 수령을 마치고 돌아올 때 고을 사람들이 선물한 것을 요강에 담아 와서 심은 것이다.
과도한 공납(貢納)을 견디지 못해 고향을 버리고 도적이 되는 사람이 허다했던 당시 한 목민관의 진심어린 선정이 그들을 감동시켜 이임 기념 선물로 준 것이다. 느티나무나 소나무 등 구하기 쉬운 나무들이 많았을 터인데도 굳이 측백나무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공의 인품에 걸맞은 백작(伯爵)의 품격에 해당하는 나무로 여겼거나, 사헌부(司憲府)의 별칭이 백부(柏府)였던 바 감찰을 따로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청렴한 관리라는 뜻이거나, 아니면 중국 한나라 성제(成帝)시 어떤 사냥꾼이 온몸에 검은 털이 나고, 나무 사이를 훨훨 날아다니는 사람을 종남산에서 잡았는데 알고 보니 200여 년 전 진(秦)왕 시절, 적이 궁중을 습격했을 때 산으로 도망친 궁녀임을 밝혀내고 그녀가 오래 살고, 추위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측백나무의 잎과 열매를 따 먹고 살아 온 것으로 밝혀져 그로부터 측백나무는 신선들이 먹는 선수(仙樹)로 알려진 바 공이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뜻이었을까. 그 내용이 무엇이었던 의미 있는 선물임은 분명하다.
공의 아호는 서암(西巖), 본관은 성산(星山)이다. 1604년(선조 37년) 성주에서 태어났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에게서 학문을 배워 1635년(인조 13년) 문과에 급제했다.
승진에 큰 욕심이 없었으므로 권세 있는 집에는 한 번도 찾아가지 않을 만큼 올곧게 처신했다. 결과적으로 벼슬길에 나선 지 40년이 되어도 높은 직위에 오르지 못하였고 내직으로 전적, 직강, 예조'형조정랑, 감찰, 사도시정, 외직으로 전라도사, 고성현령, 청주판관, 금교찰방, 임천군수(林川郡守), 선산부사를 지내고 그 후 몇 번의 벼슬이 내려졌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고성(固城)에는 송덕비가 세워져 지금도 남아 있고, 임천(林川)에서는 고을 사람들이 길을 막고 유임을 원했으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측백나무를 선물하니 가져와서 강학처였던 만연당 앞뜰에 심었다. 향리로 돌아온 공은 스승 여헌을 천곡서원(川谷書院)에 배향하고, 한훤당 김굉필(金宏弼) 신도비에 전자(篆字)를 썼다.
효심이 깊어 어머니 생일을 맞아 100여 명의 이웃들을 초대해 잔치를 벌였는데 노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74세라는 고령에도 어린 아이처럼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니 모여 있든 사람들이 모두 탄복했다고 한다.
여러 군의 수령을 지냈으나 가난하고 누추함을 면치 못했다. 1679년(숙종 5년) 76세를 일기로 이승을 마감했다. 저서로는 '서암집'(西巖集)이 있다.
염려했던대로 큰 충격을 받았다. 3년 전 돌아올 때 후손 수일님에게 두 가지를 부탁했었다.
나무 상태가 워낙 나쁘니 씨를 받든지 아니면 삽목을 하든지 서둘러 후계목(後繼木)을 생산해 앞으로 있을지 모를 고사(枯死)에 대비할 것과 가문을 상징하는 나무로 삼아 재실이나 사당 등에 많이 심어 선조의 고결한 정신을 이어받도록 하는 일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올여름 태풍 볼라벤으로 가지가 찢어지면서 죽고 말았다. 거름을 주는 등 최선을 다했으나 뜻하지 않는 재난으로 죽고 말았으니 조상을 볼 면목이 없다고 한다.
왜 종자로 대를 이을 나무를 번식시키지 못했느냐고 아쉬워했더니 씨를 따서 뿌려보기도 하고 삽목도 시도했으나 실패했으며, 심지어 수목원을 찾아가 방법을 상의했으나 거절당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종자를 뿌리면 발아가 잘 되는데 실패했다는 것은 벌레 먹은 씨이거나 파종 후 수분 관리 등에 문제가 있었던것 같다. 그러나 희귀식물의 유전자원 보호에 앞장 서야 할 수목원이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어 거절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천만다행인 것은 저절로 떨어진 씨앗 3개가 싹이 터서 현재 모수(母樹) 곁에 자라고 있다. 천우신조(天佑神助)라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것 같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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