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조영순(가명'59'여) 씨가 뇌병변 수술에 따른 재활치료를 받고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홀로 집을 지키고 있던 남편 이호승(가명'55) 씨는 기다리던 아내가 돌아왔는데도 쿠션에 기댄 채 그저 조 씨가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만 봐야 했다. 척추까지 전이된 암 때문에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내가 암에 걸리고 나서 아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아내도 아프게 된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며 "내가 죽기 전에 뭐라도 해 줄 수 있는 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해 줄 게 없다"며 하소연했다.
◆3번의 뇌경색, 그리고 암
이 씨는 지난해 10월 참을 수 없는 허리 통증 때문에 동네 정형외과 병원을 찾았다. 개인택시 기사였던 이 씨는 장시간 운전으로 인한 직업병이겠거니 생각했다. 허리 디스크쯤으로 알고 동네 병원에 다녔지만 차도가 없자 더 큰 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았는데 MRI에 암처럼 보이는 이상한 것이 찍혔다. 결국 대학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은 결과 신장암 말기. 이 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
"병원에서 진찰받을 때는 이미 암세포가 신장과 척추, 폐로 전이돼버린 상태였습니다. 수술을 해도 살아날 가능성이 낮다는 말을 들으니 삶의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더군요."
이 씨는 "일단 항암치료라도 받아보자"는 의사의 말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너무 광범위하게 퍼진 암세포 때문에 치료 또한 힘들었다. 매일 토하는 게 일이었고, 83㎏의 건장한 체격이었던 이 씨의 몸무게는 43㎏까지 줄어들었다.
사실 이 씨는 신장암 외 뇌경색도 세 번 정도 앓았다. 15년 전 갑자기 오른쪽 얼굴과 팔이 마비되는 증상이 나타났고 병원에서 뇌경색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개인택시 운전을 쉬고 2년 동안 재활운동을 통해 정상 상태를 회복했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뇌경색이 찾아왔고, 그때마다 재활운동을 통해 회복하는 삶을 반복해야 했다.
15년 동안 이 씨의 몸은 계속 병들고 쇠약해졌지만 이 씨가 지금까지 삶을 버텨올 수 있었던 건 바로 부인 조 씨 덕분이었다. 조 씨는 암에 걸린 이 씨를 돌보면서 이 씨 대신 생활비를 버는 등 억척같이 이 씨를 지켰다. 한 지방특산물 판매소에 겨우 판매원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어 일하면서 병원비를 마련해야 했다.
◆조 씨마저 쓰러지다
올 추석 마지막 날이었던 10월 1일, 이 씨는 부엌에 쓰러져 있는 아내 조 씨를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씨는 당장 조 씨를 병원으로 옮겼다. 원인은 뇌병변. 이 씨는 조 씨가 쓰러진 이유를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했다.
"나 때문에 아내가 무리했어요. 아픈 나를 간호하고 나 대신 돈 벌어오느라 갑자기 무리했어요. 볼 때마다 미안해요."
수술 후 처음에는 움직이는 것을 힘들어하던 조 씨는 다행히 빠른 차도를 보이고 있다. 이 씨는 "말이 어눌하고 무거운 물건을 들기가 어렵다는 것 빼고는 움직이는 게 정상인에 가까워져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아내를 도와줄 수 없다는 게 너무 미안하다. 조 씨는 지난달 중순 병원에서 퇴원한 뒤 다른 재활전문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데, 마음 같아서는 병원에 입원시켜 집중적으로 치료받게 하고 싶지만 한 달에 120만원이 넘는 간병비를 댈 방법이 없어 통원 치료받는 걸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것.
조 씨마저 쓰러지면서 생활비를 벌 사람이 없게 되자 이 씨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지정 신청을 했다. 이때까지 누구의 도움을 받고 살아온 적이 없던 이 씨가 국가의 도움을 받겠다고 결정한 건 자존심 강한 이 씨의 성격에 비춰 중대한 결심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빚을 지거나 도움을 받는 등 남에게 기대어 산 적이 없어요.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았고요. 국가에 도움을 받겠다고 결정했을 때도 부끄러움을 느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내보다 더 아픈 내가 먼저 저 세상에 갈 것 같은데 그러면 아내는 누가 돌봐줄 수 있겠나 싶었어요."
◆걱정과 희망이 공존하다
이들 부부의 가장 큰 걱정은 아직 해결하지 못한 간병비와 앞으로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하는 두 사람의 병원비다. 이 씨는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미 개인택시 면허와 택시를 팔았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지정되면서 다소 비용 부담을 덜긴 했지만 조 씨가 쓰러진 뒤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계속 받고 있기 때문에 재활치료비 등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찮다.
통원치료를 계속 하다 보니 이동하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다. 부부가 병원에 갈 때 이 씨의 동생이 차로 데려다 주지만 너무 미안한데다 평생 동생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가끔 이용하는 택시비도 이들 형편에선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 씨 부부에겐 자녀가 없다. 자녀를 가지려고 많은 시도를 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이 씨는 "줄기찬 노력에도 자연 유산 등으로 출산하지 못했고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더욱 서로를 의지하고 살아왔는데 부부가 똑같이 아프다 보니 자식이 없는 것이 더욱 서럽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 씨의 뇌병변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고, 이 씨의 암도 더 이상 다른 곳으로 전이되지 않고 더 악화되지도 않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만 더 집중적으로 치료를 받으면 둘 다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맨 처음 암 선고를 받았을 때는 정말 삶을 포기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내를 간호하면서 다시 삶에 대한 의지가 생겼어요. 안 그래도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내가 너무 빨리 저 세상 가면 아내 혼자 너무 힘들잖아요."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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