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通] 우포늪 '생태춤' 전도사 노용호 박사

입력 2012-12-22 07:23:15

"따라해봐요, 풀은 바르르 떨다 꿈틀…" 온몸으로 해설하는 박사님

노용호 박사가 창원 창덕여중 학생들을 상대로 생태춤을 선보이고 있다.
노용호 박사가 창원 창덕여중 학생들을 상대로 생태춤을 선보이고 있다.
"자연과 하나 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노 박사가 생태춤을 개발한 이유다.

18일 오후 경남 창녕군 유어면 우포늪 생태관. 한 무리의 여중생들이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연신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리고 있었다. 이들을 안내하던 중년남자의 설명과 동작이 예사롭지 않다.

"습지가 뭡니까. 물의 깊이가 6m 이하의 젖은 땅입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대를) 잡아먹을 듯이 손을 쳐든 모습을 한 이 사람은 갑자기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다 펴고 왼손 손가락은 하나만 펴서 숫자 6을 표시한 뒤 온몸을 물결 치듯 흔들면서 앉았다 일어선다. 학생들의 폭소가 터지고 중년 남성은 '다 함께'를 외치며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습지에 대한 설명이 만족스러웠는지 이번엔 추위에 떠는 풀의 모습을 해보인다. 앉은 자세로 몸을 바르르 떨다가 몸을 꿈틀대기 시작한다. 이어 다리를 오므린 상태로 개다리춤을 추기 시작하며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폴짝' 뛴다. 이를 따라하던 학생들의 웃음보가 빵빵 터졌다.

개그맨처럼 온몸으로 설명하는 이 남자는 국내 유일의 '생태춤' 전도사인 노용호(50) 박사다. 그는 우포늪을 찾는 사람에게 설명을 할 때면 사람이 변한다. 우스꽝스러운 동작과 리듬을 탄 억양, 리액션이 연이어 터진다. 우포늪 생태관장을 지내다 지금은 연구관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습지와 생태를 말로 설명하다 보니 반응이 시원찮아 어떻게 알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할까를 고민하다 해설과 함께 율동을 선보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생태춤을 통한 설명 방법이 인기를 끌면서 우포늪에 사는 기러기, 오리, 두루미 등을 제치고 자신이 우포늪의 진짜 명물이 되어 버렸다.

◆우포늪에 빠진 대학교수

우포늪에 대해 개그맨처럼 온몸으로 설명하는 그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학교수였다. 부산의 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경북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부터 경북 경산의 대경대에서 마케팅 등을 강의했다. 그랬던 그가 2008년부터 우포늪생태관 관장으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것은 우포늪의 가치와 인근 주민들의 소득 증대 방안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면서부터다.

"어릴 때부터 동식물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생태에 전공인 경영학을 접목시켜 생태관광을 통해 주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싶었지요. 그러다 5년 전 창녕군이 우포늪에 생태학습관을 짓고 초대 관장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안달이 났지요." 이렇게 노 박사는 안정된 교수직을 던지고 생태 지킴이로 나섰다.

그의 고향은 우포늪이 보이는 창녕군 이방면 장재리 장재마을. 아침마다 물안개가 자욱한 우포 늪을 보면서 자란 그였기에 우포늪을 잊을 수 없었단다. "조상 대대로 우포늪 주변 대합면 주매마을에 400여 년째 뿌리를 내리고 있지요. 지금도 많은 친척들이 살고 있어 우포늪은 어머니 품 같은 곳입니다. 교수 시절에는 우포늪 주변 마을 주민들이 생태관광을 통해 소득을 높일 방안에 대한 몇 편의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우포늪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남달랐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우포늪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생태관을 안내하고 우포늪을 자전거로 달리며 설명해주는 것이다. 우포늪 안내는 물론이고 천연염색, 솟대 만들기 등 생태관에서 실시하는 체험 도우미로도 활약 중이다. 외국유학 경험도 십분 활용하고 있다. 2008년 람사르협약 당사국 총회가 우포늪에서 성공적으로 열린 후에는 외국인 방문객들도 늘어나 이들을 위한 통역 및 해설에도 적극적이다. "과거 늪은 모기가 들끓고 개발해야 할 버려진 땅이라는 좋지 않은 인식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늪이야말로 물과 땅의 경계에 자리 잡은 생태계의 보고라는 점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생태춤을 창시하다.

"우포늪에서는 잔잔한 바람에 한들한들 천천히 움직이는 나무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처음엔 무심히 보았던 그 움직임이 식물에 대한 관심과 관찰로 여러 가지 동작들을 고안하게 되었지요."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생태춤의 창시자다. 우포늪에 대한 관심으로 이곳에 살고 있는 동'식물까지 사랑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생태춤을 고안하게 됐고 이를 전파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지금까지 대나무춤, 거미의 사랑춤, 병아리의 사랑춤, 사슴벌레춤 등 50여 가지의 춤을 만들었다.

"동'식물의 특징적인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자료도 찾아 사실을 기반으로 한 게 제 춤의 특징이죠. 물론 대학 때 열심히 나이트클럽에 간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그렇다고 특별한 동작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자연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감정에 따라 몸을 움직이면 된다. 노 교수의 설명에 따라 직접 한 번 자연이 돼보기로 했다.

"우리 몸이 나무의 본체이고 두 팔은 가지라고 생각하여 본체인 몸은 그대로 있고 팔은 벌려 봅니다. 바람결에 가지인 두 팔이 흔들린다고 생각하시면 되지요. 약한 바람이 분다고 생각하고 팔들을 조금씩 흔들다가 조금씩 강한 바람이 불어 팔을 흔드는 강도를 조금씩 더해 봅시다. 나중엔 태풍이 분다고 생각하고 팔과 몸을 앞뒤로도 좀 더 자유롭게 흔들어 봅시다." 설명은 계속된다. "이번에는 몸을 앞으로도 뒤로도 자유롭게 흔들고 움직여 보면서, 우포늪의 나무가 산들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적극적으로 하면 즐겁게 웃으면서 하는 동작이 될 수 있습니다."

재미로 따라하다 보니 어느새 온몸의 오감 기능을 빼앗겨 버린 것 같다. 싸이의 말춤을 능가하는 생태춤의 마력이다.

"생태춤의 작은 동작을 통해 우리 몸과 나무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우리 이웃의 사람들을 존중하듯 나무들을 존중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생태춤 전파에도 앞장설 계획이다. 내년에는 생태춤을 모아 책으로 낼 생각이다. 또 내년 8월 강원도 춘천 남이섬에서 장두이 서울예술대학 교수와 함께 공연도 할 계획이다.

"앞으로 생태춤을 통해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생태를 이해하도록 하는 등 생태 한류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자연과 하나

노 박사의 하루 일과는 우포늪에서 시작한다. 온종일 관광객들에게 우포늪과 새들에 대해 설명해 주는 해설사로, 때로는 늪 주위를 돌며 탐방객이 버리고 간 음료수 병을 치우는 청소부가 된다. 또 늪 주변 경작지에서 날아온 비닐 등을 주우며 환경감시원의 임무를 하는 등 1인 다역을 해낸다. 최근에는 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바로 생태계를 교란하는 외래종이 나타나면 이를 퇴치하는 데 앞장서기도 한다.

우포늪에 대한 노 박사의 애정은 그의 옷차림에서도 드러난다. 화려한 색상의 옷으로 혹시 새들이 경계심을 가질까 봐 자연친화적인 하늘색 계통의 옷만 입는다. 6년째 자전거로 우포와 목포, 사지포, 쪽지벌 등 4개 늪을 순찰하고 새들을 접하다 보니 이제 새들도 친구처럼 대한단다. 왜가리나 백로, 노랑부리저어새들도 노 박사를 알아보고(?) 다가서도 도망을 가지 않는단다. 새들에 대한 배려도 남다르다. 휴대 전화벨 소리는 아예 처음부터 진동으로 고정해 새들이 놀라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앞으로 우포늪을, 학생들이 늪 주변을 걸으면서 생태적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교육장으로 만들 계획이다. "학생들이 습지를 눈으로 보고 물새 소리를 들으면서 '늪이 이런 곳이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우포에는 개구리밥도 살고 왜가리도 있다는 지식적인 측면보다 생태적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교육을 하고 싶어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아이가 성장했을 때 인성 교육 면에서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우포생태체험학교'를 세우기 위해 노력 중이란다. "우포늪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닙니다. 수많은 동식물들과 사람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곳이지요. 누구라도 우포늪에 와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조용히 감상할 수 있습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노용호는=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부산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경북대에서 생태관광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경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생태학자로 변신했다. 2008년 람사르총회 유치위 자문위원, 대구생태유아협회 이사 등으로 활약했다. 함평 국제곤충나비엑스포 자문위원, 2011년 UN 사막화방지총회 경남도자문위원, 환경부 한국형 생태관광연구포럼 자문위원, 과학기술부 과학창의재단 강사 등으로도 활동했다. '우포늪따오기 종복원을 활용한 생태관광' 등 생태관광과 관련하여 2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우포늪생태관 관장을 지내고 현재 연구관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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