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은 충청도지만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경계로 강원도, 경상도와도 가까운 거리에 있어 3도의 공통점을 다 갖고 있다. 그래서 예부터 이곳에는 산의 정기를 품은 다양한 약초가 지천에 널려 있을 정도로 흔하다. 음식재료인 산채와 달리 산뽕잎과 오가피, 당귀를 주 재료로 한 제천의 약선음식 브랜드 '약채락'이 지금 전국 식도락가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인기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약채락에서 성공하는 향토 음식 산업화의 길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약초를 이용한 향토 음식 산업화
제천 약채락의 대표 주자가 '대보명가'다. 제천 시내 중앙통에 위치한 이 음식점에 들어서면 내부 공간부터 시원스럽게 꾸며놨다는 느낌을 받는다. 높다란 천장은 그 자체로 품격을 자아낸다. 입구부터 이 집 주인이 충북도지사와 제천시장으로부터 받은 표창장이 수두룩하게 걸려 있다. 이번 대선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다녀갔다. 김황식 국무총리와 이수성 전 총리, 그리고 허준영 전 철도청장의 사진도 눈에 띈다. 황수관 연세대 교수와 탤런트 사미자, 김태우, 김청, 이광기 등등 수많은 명사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 식신 원정대도 다녀갔다. 다들 방문기념 사진과 함께 크게 사인까지 해놓았으니 음식 맛이 흡족했던 모양이다. 한방요리경연대회에서 받은 수상기록도 다양하다.
창가에 전시해 둔 갖가지 약초 뿌리는 그 자체가 기를 돋워주는 듯하다. 술에다 담가 놓은 약초들은 처음 보는 것이 많아서 신기하기까지 하다. 식당이라기보다 한방 찻집이나 전시관에 온 느낌이 든다. 메뉴판을 보고 먼저 '약초쟁반'을 주문했다. 준비된 약초들이 금세 차려진다. 발효시킨 산뽕잎과 당귀, 오가피 잎사귀에다 능이, 표고, 송이, 만가닥 버섯, 황금송이까지 몸에 좋다는 버섯은 다 모아놨다. 산뽕잎은 오디가 달린 채로 효소로 만들었다. 접시에 예쁘게 담아낸 양지, 사태, 우설 등을 얇게 저며내 수육으로 만든 소고기 특수부위는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모두 1등급 한우만 취급한단다.
"산세가 좋은 제천에는 산에서 나는 약초가 풍부합니다. 워낙 재료가 다양해서 여기서는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구할 수 있지요."
주인 권희상(44) 씨는 먼저 약초를 다려낸 맛국물에 삶은 소고기를 넣고 여러 가지 약초를 샤브샤브 방식으로 익혀낸다. 먹는 방법은 살짝 익힌 고기에 버섯과 약초를 곁들인 다음 산뽕잎이나 곰치장아찌로 싸서 간장에 찍어 먹는다.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전통약선음식을 진화시켰다. 전통 신선로 음식을 현대인의 식탁에 맞게 퓨전화한 것이다. 익힌 고기와 약초를 산뽕잎으로 싸서 입에 넣으니 먼저 혀에 감기는 산뽕잎이 감미롭기 그지없고 고기맛이 담백하기 이를 데 없다. '1능이 2표고 3송이'가 한곳에서 같이 익는다.
"밥을 짓는 물도 엄선합니다. 여덟 가지 한약재를 달여 낸 물을 사용하지요."
권 씨는 밥도 한약 달여내듯 정성을 다해 짓는단다. 상차림 이전에 전채 형식으로 떡 잡채와 닭 샐러드, 마 튀김, 백김치 등 4가지가 코스 요리로 나온다. 이후 각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은 남성밥과 여성밥이 차려진다.
남성밥은 콩과 대추, 호두 등 견과류를 밥 위에 얹고 인삼, 백출, 감초 등 여덟 가지 약초 달인 물을 부어 밥 색깔이 거무튀튀하다. 기운을 북돋워 주는 쪽으로 밥을 짓는다고 한다.
여성밥은 은행, 호두, 대추 등을 얹고 당귀와 천궁, 숙지황 등을 달인 물로 밥을 짓는다. 그래서 여성밥은 당귀 향이 진하다. 코스 요리 약초쟁반은 한 상에 5만5천원. 약간 비싼 편이나 4, 5명이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반찬은 방풍나물 겉절이와 콩고기 튀김, 돼지고기 고추장 주물럭, 두부 양념장조림, 양배추 겉절이, 무김치, 된장찌개가 있다. 또 비트(홍당무) 장아찌와 산마늘 장아찌, 김, 우엉, 두릅, 산뽕잎, 산야초, 매실 등으로 만든 장아찌류가 식탁이 비좁게 차려진다.
◆약초의 쓴맛을 숨기는 게 비법
이 집 음식 스토리텔러 오명재(50) 씨는 밥상머리에 앉아 식재료 대부분은 직접 생산하거나 제천 웰빙한방특구에서 구입한다고 설명한다. 식수 하나에도 5가지 몸에 좋은 버섯을 달여 낸 다음 그 물을 차게 식혀서 낸다고 자랑한다. 돼지 불고기에서 물씬 풍기는 짚불 냄새는 숙성과정에 목초액을 뿌려 놓았기 때문이라고. 약초쟁반 상차림 전체가 흰색, 녹색, 붉은색, 검은색 등으로 화려해 식탁 코디도 품격이 높다. 음식 선택권이 여성에게 있는 세태를 반영해 상차림 콘셉트도 여성에 맞춰졌다는 느낌이다.
단순히 음식이라는 차원을 떠나 어떻게 하면 사람 몸에 이로울까 하는 고민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약초쟁반 샤브샤브에 생고기를 쓰지 않고 수육으로 내는 이유도 기름기를 제거하고 맛국물을 담백하게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방식. 16가지 한약재를 넣고 달여 낸 맛국물이 식사가 끝날 때까지 맛이 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번거롭고 귀찮아도 그런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 전국적인 인기를 끄는 배경이다. 산야초 장아찌 하나만 해도 식재료로 사용하는 데는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약선음식이라고 해도 맛이 우선이지요. 아무리 몸에 좋은들 한약처럼 쓴맛으로는 외식산업을 성공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권 씨는 한약재 중 생으로 음식 맛을 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어 대다수 달여서 사용한다고 한다. 약성이 있는 것은 대개 쓴맛을 띠는데 이 쓴맛을 없애는 방법으로 효소를 만들어 섞어 주면 감쪽같이 감춰지게 된다고 했다. 바로 이게 약선음식의 성패가 달려 있는 비법이라고 귀띔한다.
"술 또는 식초로 발효되기 전 단계가 효소지요. 쓴맛의 약초는 효소로 발효시켜서 친숙한 맛을 만들어 냅니다."
효소로 발효시키는 방법은 약초를 설탕에 재워 삼투압을 활용해 자연스럽게 발효시킨다는 권 씨는 이를 위해 무려 1만 평의 밭을 직접 무공해로 경작한다. 오가피밭만 3천 평이다. 작년산 산뽕잎만 3t, 곰치 4t, 곤드레 6t을 효소로 생산해 항아리에 저장해 두고 있다.
채소와 산나물은 말리거나 얼려서 저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소금에 절여서 사용한다. 말리면 묵나물이 돼 아무리 좋은 산나물도 맛이 시래기와 같아져 버리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 얼리면 질겨 원래의 식감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는 까닭도 있다. 염장은 맛의 70%를 유지시켜 주고 식재료 고유의 향도 살려 주는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이 같은 약초와 산채의 발효나 보관방법이 고안되면서 향토음식의 유통 상품화도 시도하고 있어 주목된다. 냉동 송이와 산야초 장아찌를 비롯해 곰치, 오가피, 방통, 표고버섯, 당귀순 장아찌는 벌써 전국에서 주문이 밀려들 정도로 인기상품이기도 하다.
◆약초비빔밥으로 학교급식에도 도전
대보명가의 하루 매출은 300만원 정도다. 60평짜리 식당으로서는 경이적인 매출이 아닐 수 없다. 1회에 평균 매출이 80만원 정도인 식탁 22개가 하루 4회전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더욱이 주말이면 7, 8회 회전한다니, 월 매출은 보통 1억원에서 1억3천만원이나 된다. 주방 직원은 8명, 홀서빙은 5명이 담당한다. 손님이 평일에는 200명 정도이나 주말에는 무려 500명이 넘는다. 1인당 평균 1만5천원짜리를 주문한다. 2007년에 처음 창업했으니 창업 5년 만의 실적치고는 대단하다. 2010년 9월 제천 한방엑스포 때 전국에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손님의 90%가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하루 최고 매출은 780만원까지 올려봤다고 권 씨는 자랑한다.
이처럼 제천시의 약채락은 웰빙음식이라는 이미지에다 최근 식생활 패턴도 웰빙 위주로 자리 잡아 가는 추세에 딱 맞아떨어지는 향토 음식 산업화의 성공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제천시는 식품의 영양성과 기호성, 편의성, 천연지향성에다 건강기능성까지 충족되는 고품격 레시피를 개발, 외식업체 지원에 나섰다.
주 재료는 제천의 특산약초인 황기, 오가피, 뽕잎 등 3가지 약초 나물을 사용한다. 부재료로 표고버섯과 콩나물, 도토리묵 등이 곁들여진다. 고명으로 대추와 잣 등 견과류를 쓰며 약초의 쓴맛을 중화하고 감칠맛을 내게 하는데 중점을 뒀다. 또 전체적인 밥 색깔과 약초 부재료들의 조화를 이루고자 밥도 황기 진액과 표고 우린 물을 첨가해 구수한 맛과 영양을 살렸다.
제천시보건소에 의하면 특산 약초 황기는 우리 몸의 기를 보충하는 약재로 '황'은 노란색, '기'는 스승의 의미로 보약의 우두머리를 뜻한다는 것. 그리고 당귀는 피가 부족할 때 피를 생성해 주는 보혈작용이 뛰어나며 기혈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약초다. 뽕잎은 콩 다음으로 단백질 함량이 많은 이파리 채소이며, 오가피는 뿌리, 가지, 잎, 꽃 모두를 사용할 수 있는 약나무로 해독작용이 뛰어나 제2의 산삼이라고 불리는 건강 식재료라고 소개했다.
약채락은 이제 학교 급식 식탁에 올랐다. 제천시내 5개 초'중학교는 지난가을부터 약채비빔밥을 월 1회 학생들 점심메뉴로 채택하고 있다. 제천시보건소 직원 동아리인 '개구락지'와 제천교육지원청, 영농조합법인 '순우리초'가 공동으로 나서 성장기 어린이들에게 안전한 먹거리인 약채락 약초비빔밥을 학교급식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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