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신문지와 '몸'의 대화…최병소 개인전

입력 2012-12-21 09:48:32

대구미술관, 내년 2월까지 '최대 규모' 개인전

현대미술가 최병소의 전시가 2013년 2월 17일까지 대구미술관 2전시실에서 열린다. 신문지를 볼펜으로 지운 후 그 위에 연필로 다시 한 번 지우는 그의 작업은 30여 년간 계속되고 있다. 신문이라는 본래의 물성은 사라지고 종이도, 볼펜도, 연필도 아닌 전혀 다른 물질이 남는다. 신문 한 면을 다 지우려면 볼펜 20자루와 연필 2자루가 소요된다. 작가의 오랜 노동에 가까운 작업은 관람객들에게 사색의 장을 열어 준다.
현대미술가 최병소의 전시가 2013년 2월 17일까지 대구미술관 2전시실에서 열린다. 신문지를 볼펜으로 지운 후 그 위에 연필로 다시 한 번 지우는 그의 작업은 30여 년간 계속되고 있다. 신문이라는 본래의 물성은 사라지고 종이도, 볼펜도, 연필도 아닌 전혀 다른 물질이 남는다. 신문 한 면을 다 지우려면 볼펜 20자루와 연필 2자루가 소요된다. 작가의 오랜 노동에 가까운 작업은 관람객들에게 사색의 장을 열어 준다.
최병소 작가
최병소 작가

참 희귀한 작가의, 참 희귀한 전시다.

현대미술작가 최병소는 1970년대부터 30년간 오로지 신문지를 지워나가는 작업을 해왔다. 하루 10시간 작업했을 때 대충 계산해도 10만 시간이 넘는다. 세계 어디에 이렇게 긴 시간 '몸'으로 작업하는 작가가 있을까.

현란하고 원색적인 이미지가 가득한 이 시대, 최병소는 묵묵하게 흑연과 검은 볼펜만으로 승부를 걸어왔다. 그의 전시가 대구미술관에서 2013년 2월 17일까지 열린다.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대구 작가 개인전으로는 최대 규모다.

대구미술관 2층 전시실. 어둑한 텅 빈 전시실 아래, 검은 물질이 걸려 있다. 길게 드리워진 이 물질은 불에 타다만 재 같기도 하고, 광택을 머금은 슬픔이 어리는 것 같기도 하다.

최병소의 작업은 단순하다. 신문을 펼치고 빈틈이 보이지 않을 만큼 앞뒤로 빽빽하게 볼펜으로 칠한다. 그리고 그 위에 연필로 다시 까맣게 칠한다. 그러면 신문이라는 본래의 물성은 사라지고 종이도, 볼펜도, 연필도 아닌 전혀 다른 물질이 남는다. 이 물질은 긁혀서 떨어지기도 하고, 자연스레 낡아버린다.

최근에는 신문 대신 신문 크기로 자르기 전 신문용지로 작업하고 있다. 수 미터에 이르는 작품을 몇 달간 앉아서 지워나갔을 작가의 작업은 노동 그 자체다.

국공립미술관에서 처음 전시를 여는 최병소 작가는 2층 5개 전시장을 사용한다. 작가는 공간을 잘 어루만져, 작품과 공간과의 가장 적절한 어울림을 보여준다.

첫 번째 방은 마치 고요한 묵상의 장소로 느껴진다. 볼펜과 연필로 모두 지워진, 그래서 이젠 알 수 없는 물질로 변해버린 신문용지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두 개의 작품은 전시장에서 서로 묵묵히 바라본다. 누군가는 이 검은 물질을 '주인을 잃어버린 그림자'로 읽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흑연이 돼버린 종이의 시신'으로 느낀다.

한편 전시장 벽에는 거울을 활용한 독특한 설치작품이 눈에 띈다. 폭 50cm의 그의 신문 작업은 전시장 양쪽 끝 거울을 만나면서 무한히 확장된다. "이 작품을 통해 수평적 확장을 추구해봤어요. 다음 전시에는 수직적 확장을 해보고 싶네요."

두 번째 방은 작품의 뒷면을 보여준다. 작가가 처음 하는 시도로, 볼펜으로 검게 지워나간 신문 용지의 뒷면은 작업의 흔적이자, 행위의 기록물이다. 작가는 "작업의 앞뒷면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말한다.

세 번째 방은 작가가 처음 시도하는 설치작품으로, 신문을 볼펜이나 연필로 지우는 것이 아니라 '작두'로 지워낸다. 수만 장의 매일신문을 협찬 받아 진행된 이번 설치작품은 수만 장의 신문의 의미를 한꺼번에 지워나간다. "읽을 수 있는 것을 읽을 수 없도록 한다는 의미에선 볼펜으로 지우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9월과 10월 매일신문을 절단해 섞었습니다."

네 번째 방은 런던올림픽 기간에 발행한 영국신문 '더 타임즈'(THE TIMES)를 잉크없는 볼펜으로 흠집을 내는 평면 설치작업이다. 600여 장의 신문은 전시장 벽을 채우고 있다. 그 맞은편에는 그 신문을 긁다가 생겨난 신문의 부스러기 파편들이 전시돼 있다.

왜 하필 올림픽일까. "축제잖아요. 실제로 올림픽을 둘러싸고 어떤 보도가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저의 창작 역시 축제와 놀이죠." 마지막 방은 한지와 비닐 작품이 선보인다.

그의 작품 앞에 서면, 기괴한 슬픔, 처절함 등의 정서가 오롯이 느껴진다. 하지만 평론가 신용덕 씨는 "감성적으로만 읽혀지는게 아니라 개념적으로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병소의 작품에는 기존 서양미술에서 발견하기 힘든, '한국적' 정서가 녹아있는 한국미술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완성이 된 듯 아닌 듯, 그리고 작품을 정복하려 하는 게 아니라 서먹하게 바라보는 그 태도가 한국의 정서라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한국의 미술계 뿐만 아니라 일본, 프랑스 등에서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오로지 신문을 지워나가는 작업에만 몰두해온 작가의 존재 자체가 희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저 '적성에 맞을 뿐'이라고 말한다. "1970년대에 이 작업을 시작했지만 중간에 10년쯤 지루해서 이 작업을 그만두기도 했어요. 하지만 1990년대 다시 시작하니 적성에 딱 맞았죠. 머리가 좋은 사람은 머리로, 눈이 뛰어난 사람은 눈으로 작품을 하는데, 나는 '몸'으로 해요. 하루종일 앉아서 엉덩이 힘으로 작업하는거죠. 신문을 볼펜으로 지우고 그 위에 연필로 지우면, 신문이 볼펜과 연필을 만나 신문이 아닌 다른 물질로 성불하는 것 같아요."

미술 시장의 트렌드를 따라다니며 금방 지치고 조로하는 작가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자칫 소모적으로 보이는 이 작업을 30년간 해온 '작가 최병소'라는 존재는 유의미하다.

신용덕 씨는 이어 "언뜻 보면 미니멀해보이지만 소박하고 내향적이면서도 자기 완결적 정신이 내제돼 있는 최병소의 작품은 한국의 선비 정신과 맞닿아 있다"면서 "최병소야 말로 한국미술로 차별화될 수 있는 작가"라고 말했다.

마치 낙서같은 작업을 현대미술 한가운데 우뚝 세운 최병소. 낮은 숨결에도 흔들리는 그의 작품 앞에서 작가가 쏟아부은 시간의 아우라와 작가로부터 떨어져나온 또 하나의 세계가 교차한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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