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빼곤 다 바꿔…마침내 '순혈 우승'
0승4패로 허망하게 한국시리즈를 내준 2010년 겨울. 삼성 라이온즈는 메가톤급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를 각 언론사로 보냈다.
'선동열 감독 퇴진, 류중일 감독 선임'.
모두가 놀랄 만한 일이었다. 비록 한국시리즈에서 1승도 거두지 못했지만, 팀을 정규시즌 2위에 올려놓은 감독이 교체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더욱이 그가 2005년과 2006년 삼성을 2년 연속 챔피언에 올려놓은 데다, 2009년 말 5년간 총액 27억원에 재계약한 뒤 1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은 '선 감독이 용퇴 의사를 밝혔다'는 삼성의 발표를 의심하게 했다. 특히 삼성은 선 감독의 진두지휘하에 세대교체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그런 그에게 구단도 시즌 중 5년 재계약을 맺으며 무한 신뢰를 보낸 터라 용퇴가 아닌 경질에 무게가 실렸다.
삼성은 '팀의 새로운 변화와 쇄신을 위해서'라 발표하며 선 감독이 스스로 물러나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외부에선 '2등은 필요 없다'는 삼성 특유의 1등 지상주의가 발단이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준우승하고도 옷을 벗은 경우는 모두 6번. 그중 4번이 삼성에서 이뤄졌다. 1985년 통합우승을 빼고는 단 한 차례도 한국시리즈 정상에 서지 못하는 과정에서 3번. 그리고 선 감독이 네 번째 철퇴를 맞은 것이어서 1등주의로의 복귀를 뒷받침했다.
원년 서영무 감독이 그랬고, 1986년 김영덕 감독, 그리고 1990년 정동진 감독이 팀을 한국시리즈에 올려놨으나 우승하지 못하면서 팀을 떠나야 했다. 김성근, 김용희 감독 역시 삼성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고도 그해 유니폼을 벗었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으나 원하던 한국시리즈 우승의 결과물을 받아들지 못하자 삼성은 해태(KIA의 전신)서 9차례나 우승을 맛봤던 김응용 감독을 영입하는 초강수를 둔 끝에 목적을 이뤄냈다. 그리고 바통을 이어받은 그의 후계자 선동열 감독(현 KIA)이 2005'2006년 삼성을 2년 연속 정상에 올려놓으며 삼성은 비로소 '우승 갈증'을 풀어내는 듯했다.
그러나 2006년 이후 다시 3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오르지 못한 데다 2009년에는 12년이나 연속으로 초대됐던 포스트시즌 진출마저 좌절됐다. 그리고 2010년 힘겹게 오른 한국시리즈서 무기력한 패배를 당하자 그동안 가라앉혀 놨던 1등주의가 다시 피어오른 것이었다.
여기에 선동열 감독의 '지키는 야구'가 팬들에게 인기를 얻지 못하면서 정권교체의 빌미를 제공했다. 프로 초창기부터 막강한 타력을 앞세우며 무서운 공격야구를 선보였던 삼성은 선동열 감독이 취임하고 나서는 투수력에 치우치며 화끈함을 보여주지 못했다. 한 번 잡은 리드는 철벽 계투진이 지켜내 승리를 보장했지만, 감동과 재미까지 선사하지는 못했다.
'이제는 돌아가자'는 열망이 구단을 압박했고, 그런 바람은 선동열 감독의 퇴진으로 현실화됐다.
해태를 9번 우승시킨 뒤 2001년 삼성의 감독으로 와 부임 2년째인 2002년, 우승 갈증을 풀어준 김응용 감독. 이후 2004년 프로야구 최초의 전문경영인이라는 명예를 안으며 사장 자리에까지 앉은 그와, 그를 영입했던 김재하 단장, 무등산 폭격기로 불리며 해태 시절 김 사장과 사제의 인연을 맺은 뒤 해태의 전성기를 이뤄냈고, 2004년 스승을 따라 수석코치로 삼성에 온 뒤 이듬해 지휘봉을 넘겨받아 두 차례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던 선동열 감독.
이들 3인방은 공교롭게도 '쇄신'의 명분 속에 감춰진 삼성의 1등 지상주의와, 좀 더 화끈한 야구를 갈망한 팬들의 염원에 떠밀려 같은 운명을 맞게 됐다.
김응용 사장, 김재하 부사장(단장)에 이어 선 감독까지. 그해 겨울, 구 수뇌부들을 전격 물갈이하고 새로운 체제의 출범을 알린 삼성은 짙은 호남색으로 인한 반지역적 정서 걷어내기에도 박차를 가했다.
삼성은 '우승'과 '순혈주의'라는 예정된 포석을 재빠르게 실행했다. 선수로 또 코치로 24년간 한결같이 삼성맨이었던 류중일 코치를 감독에 앉힌 삼성은 10년 만에 김인 사장(대구고)-송삼봉 단장(대구 중앙상고)-류중일 감독(경북고) 등 구단 수뇌부를 지역 출신으로 채우며 팀 창단 후 처음으로 순혈주의 우승을 꿈꿨다.
코치진도 삼성맨으로 채웠다. 장태수(대건고), 장효조'양일환'김태한(대구상고), 김현욱(경북고) 등 기존 코치에다 홈런왕을 거머쥐었던 김성래(경북고)와 김용국(대구상고'현 상원고), 성준(경북고), 강기웅(대구고) 코치를 불러들이면서 1'2군 코칭스태프 대부분이 프랜차이즈 코치들로 채워졌다.
류중일 감독은 구단과 팬들이 바라는 것을 재빨리 읽어냈다. 취임식서 "호쾌한 공격 야구,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야구를 펼치겠다"며 당찬 포부를 밝힌 그는 부임 첫해 삼성을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았다. '순혈 삼성'으로 이뤄낸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2012년 삼성은 일본에서 돌아온 이승엽을 영입, 삼성 팬들의 '프랜차이즈 스타' 갈증 해소에 마침표를 찍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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