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나의 하루

입력 2012-12-18 07:20:28

새벽 4시 30분. '따르릉, 따르릉.' 오늘도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에 오면 5시 40분. 아주 가벼운 운동을 하고 난 후 거울 앞에 서서 배에 힘을 주며 양 팔을 배 앞쪽으로 모아본다. 배에 나만 알아 볼 수 있는 왕(王)자를 보며 흐뭇해한다.

아침 7시 20분.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우리 반 교실에 가본다. 아무 할 일도 없으면서 괜히 일찍 오는 학생이 나를 반긴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일찍 왔으면 공부나 해라. 멀뚱멀뚱 칠판만 쳐다보고 있지 말고." 나는 학생들에게 살갑게 말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과 친해질수록 더욱 그런 것 같다. 남학교이니까 다행이지 여학교였으면 매우 인기 없는 교사이지 싶다.

아침 8시 20분. 아침청소와 독서 지도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1교시가 없는 날이다. 하지만 과학중점학교 정책연구학교 운영 보고회가 10여 일 남았다는 생각에 벌써 피곤해진다. 왠지 오늘따라 더욱 하기가 싫다. 이런 것을 누가 만들었는지 참 궁금해지고, 만나고 싶다. 직접 만나더라도 나는 착하니까 멱살을 잡지는 않을 것이라고 상상하고 나니 보고서를 쓰는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딩! 동! 댕! 동!' 종이 울린다. 2교시는 생물Ⅰ 수업이다. 오늘은 여성의 생식 주기에 대하여 설명할 차례다. 놀라운 것은 평소에 '나는 공부와 상관없으니까 그냥 놔두세요'라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자던 학생이 오늘만큼은 눈을 초롱초롱하게 뜬 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수업 내용을 모두 파악하고 질문까지 하고 있다는 것.

3교시 과학융합과목 수업까지 끝나면 급히 우리 반 축구팀 옷으로 갈아입는다. 축구화의 끈을 묶는 순간 나는 '메시'(스페인 프로축구 FC 바르셀로나 선수)다. 4교시는 우리 반 체육 시간. "내가 수비를 서면 아무도 골을 못 넣어!" 오늘도 자신 있게 큰 소리를 치며 수비수 자리에 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점을 잃는다. "쌤, 공격수 가세요. 제가 공을 찔러 드릴게요. 골 넣으세요." 제발 그냥 최전방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눈빛을 띠며 나를 공격수로 보낸다. 나는 아직 한 번도 골을 넣은 적이 없다.

낮 12시 50분. 점심을 먹고 잠시 쉬고 있는데 한 학생이 급히 뛰어온다. "쌤! 쌤! 철수가…. 철수가 죽으려고 해요." 무슨 말인가? 열심히 공부를 잘하고 있는 철수가 갑자기 왜…? 나는 쏜살같이 철수가 있는 곳으로 달린다. 철수는 4층 창문 앞에 서 있고 신발과 교복 상의는 가지런히 창문 밑에 놓아두고 있다.

나는 조용히 철수를 상담실로 데리고 가 사정을 들어본다. 철수는 반에서 1등이지만 늘 전교 1등을 하는 누나 때문에 어머니에게 자주 공부를 강요당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어제 친 시험 성적이 이전보다 몇 점 낮게 나오자 부모님 뵐 걱정에 우발적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세상에나!'

난 곧바로 철수 집에 전화를 건다. 철수 어머니가 허겁지겁 달려온다. 내가 상황을 설명하자 어머니는 하염없이 울면서 자신이 지나쳤다고 반성한다. 철수에게는 부모님이 너를 너무 사랑하셔서 그렇게 했으며 앞으로는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일러둔 뒤 교실로 보낸다. 학생들의 성적이 좋든 나쁘든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7, 8, 9교시 수업에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마치고 나니 무척이나 피곤하다. 밤 9시 30분. '삑! 지문이 인식되었습니다'라는 소리를 뒤로 하며 교문을 나선다.

임흥수 경상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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