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九九消寒圖(구구소한도)를 그립시다

입력 2012-12-17 10:51:20

응달진 산비탈에 희끗희끗 남아 있는 잔설(殘雪)에 눈바람이 차갑습니다.

나흘만 지나면 동지(冬至), 아직 고드름 수염을 한 동장군은 채 문간 밖에도 안 오셨는데 벌써부터 전력난 비상등이 켜졌습니다.

고달픈 서민들은 긴 겨울날 일이 태산 같습니다. 그나마 덜 고달픈 사람들도 마음이 팍팍해지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세상 좋아졌다는데도 살기는 그냥 그렇습니다.

보일러도 없고 첨단 발열 섬유도 없던 시절 우리 선조들의 겨울나기가 차라리 넉넉했나 봅니다. 그분들은 기나긴 겨울 추위를 보일러나 온풍기 대신 희망과 기다림이라는 '꿈'으로 이겨냈습니다. 그 '꿈'이란 봄을 기다리는 여유로움이었습니다.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가 그것입니다. 옛 선비들이 기나긴 겨울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그렸다는 그림입니다.

구구(九九)란 9×9=81, 즉 여든한 개의 꽃송이를 뜻하고 소한(消寒)이란 말 그대로 추위를 잊어서 삭여 내는 걸 말합니다. 옛 선비들은 동짓날 창호지에 하얀 매화꽃 81송이를 그려 벽이나 창문에 미리 붙여 놓고 매일 하루에 한 송이씩 차례대로 빨갛게 색칠을 했다고 합니다. 하루 한 송이씩 하얀 매화 그림 위에 색을 칠할 때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 꽃송이를 완성시킵니다.

그렇게 색칠을 하다 보면 동짓날로부터 81일째 되는 날 드디어 81송이의 매화가 모두 다 붉게 그려집니다. 그러고 나서 창문을 열어보면 어느새 봄을 알리는 진짜 매화가 뜰 앞에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봄이 온 것입니다.

아무리 매서운 겨울 추위라도 '봄'이라는 희망을 기다리는 마음에는 추위를 견디고 잊을 수 있는 인내가 솟아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구소한도'는 우리 선조들의 낭만이요, 여유이며 기다림의 미학이었던 것입니다. 그 어떤 난방기보다 품격 있는 겨울나기의 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육체적 추위보다 마음의 추위를 더 타고 있습니다. 난방기 없음을 자조하고 더 따뜻한 털옷 없음을 불평합니다.

그런 팍팍한 삶터를 만든 장본인으로 정치와 정적(政敵)을 지목하고 비난할 뿐 자기 내면의 꿈과 기다림의 여유를 부릴 줄 아는 낭만이 없습니다. 기다림의 여유를 지니면 언젠가는 봄이 온다는 꿈 대신 적개심과 불평만 품습니다. 그러니 몸보다 마음이 더 추워집니다. 나만이 전부를 가져야 한다는 욕심으로 스스로 차가운 가슴을 만듭니다.

대선 선거전이 요동치고 있는 이 겨울, 겨루는 후보들이나 우리 모두 마음속에 구구소한도를 그려보는 여유가 필요해 보입니다.

서로서로 저마다 각자의 창문에 매화꽃을 그려 놓고 한 송이 한 송이씩 아름답게 채색해 나가면서 '함께 누릴 봄'을 기다리는 마음 말입니다. 헐뜯을 거리만 찾지 말고 남의 약점과 어두운 과거를 뒤지는 대신, 오늘은 꽃송이에 미움 대신 사랑의 마음을 채색하고 내일은 교만 대신 용서의 마음을 그려 넣고 그다음 날엔 미덕의 마음을 그려 넣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문마다 아름다운 꽃들만 활짝 그려질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창문을 열어보면 희망과 꿈이라는 꽃이 피어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소한도를 그릴 마음만 있다면 화톳불에 둘러앉아 군밤이라도 구워 먹으면서 할 말 안 할 말도 정겹게 나누며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 화톳불 꼬챙이를 들고 난리 치며 눈 부라려야 겨울이 더 빨리 지나가는 건 아닌 것입니다.

내일모레면 긴 겨울 살얼음판 같던 대선판도 끝이 납니다. 박 씨네 집, 문 씨네 집 어느 집 뜰의 매화꽃이 더 많은 꽃송이를 피워낼지 모레 밤이 이슥해지면 알게 될 것입니다.

최후의 꽃이 누구 집 뜰에서 피어나든 마지막 남은 단 며칠이나마 서로가 '구구소한도'를 그리는 마음이 된다면 패배의 순간에도 따뜻한 마음으로 박수를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81송이의 매화를 그릴 마음이 안 된다면 서로서로 설욕의 분노를 씻어내는 구구소분도(九九消忿圖)라도 그려봅시다. 적개심과 모함과 흑색 마타도어로는 이 추운 겨울, 단 한 송이의 매화도 피워낼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의 봄만 멀어지는 것입니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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