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공작(工作)

입력 2012-12-15 08:00:00

'공작'(工作)이라는 것만큼 묘한 느낌을 주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1960, 70년대만 해도 초등학교 미술 과목에는 '공작 시간'이 있었다. 찰흙이나 종이 등으로 형상을 만드는 수업이었다. 그것이 언제부턴가 '만들기'라는 말로 바뀌었는데 듣기에 좋고, 의미 전달도 훨씬 정확하게 되는 것 같다. '공작'이란 말에는 이런 창조적 행위 말고 또 다른 뜻이 있다. 사전에는 '어떤 목적을 위하여 미리 일을 꾸미는 것'이라고 나와 있는데 이 경우에는 비밀스럽고 음습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거기다 음모와 조작의 냄새까지 풍겨난다. 과거에 북한 공작원, 선전 공작, 공작 정치 같은 말을 수없이 들으면서 성장했기 때문에 잠재적인 거부감이 있는지 모른다.

공작 활동의 최고봉은 뭐니 뭐니 해도 정치 공작이 아닐까 싶다. 역사적으로 정권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치 공작이 필요악처럼 행해진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정부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아 정치 공작을 시작한 곳은 1917년 러시아혁명 직후 설립된 소련 정보기관 체카(KGB의 전신)였다. 취약한 소비에트 정권의 유지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훗날 히틀러가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공산당의 정치 공작 방식을 고스란히 차용해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해방 직후 한국에서는 '정치 공작'이라는 말이 각종 단체의 이름에 여러 번 사용된 적이 있다는 점이다. 해방 후 백범 김구의 임시정부가 환국한 뒤 민족 진영을 조직화하기 위해 '정치공작대'라는 이름의 조직을 만들기도 했고, 1950년 '대한정치공작대'라는 사설 단체가 권력의 비호 아래 야당 인사들을 음해하려다 적발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서 '정치 공작'이라는 말을 들으면 맨 먼저 연상되는 곳이 있다.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다. '정치공작사령부'로 불리며 정권 유지를 위해 숱한 불탈법을 저질렀던 과거사로 인해 그렇게 시대가 바뀌었어도 음모와 조작의 선입견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 모양이다.

국정원 여직원의 '인터넷 여론 조작 의혹'으로 시끄럽다. 아무리 국정원 직원이라고 해도 요즘 공무원들의 풍토에 비춰 부당한 상부 지시를 그대로 따랐을 것이라고는 믿기 어렵지만, 야당 측이 명백한 사실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으니 참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과연 국정원, 민주통합당 둘 중 어느 곳이 '공작 정치'의 구태를 재연하고 있는지 너무나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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