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이 항일 독립운동가들을 꺼린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의 꺾이지 않는 의지가 두려웠기 때문. 가인 김병로(1887~1964)도 일제강점기 시국 사건 변호를 도맡다시피 하면서 항일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이인, 허헌과 함께 인권 변호사 3인방으로 활동했다. 그런 그를 초대 대법원장에 임명하는 것이 큰 부담이었지만 그에 대한 국민들의 신망이 워낙 두터워 대법원장에 앉힐 수밖에 없었다.
대법원장에 임명된 김병로는 이 대통령의 예상대로 만만하게 굴지 않았다. 사사건건 정권의 입장과 대립했다. 대법원장에 재임하는 9년 3개월 동안 그는 외부의 갖은 압력과 간섭을 뿌리치고 사법 독립의 기틀을 다졌다. 그에게 사법권의 독립과 재판의 독립성은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그러다 보니 마음고생이 심해 한국전쟁 때 다쳤던 다리의 지병이 도져 한쪽 다리를 절단하는 아픔도 겪었다. 평생 한복을 입고 지낸 것으로 유명하다. 대법원 주관으로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의 변론 경진대회인 가인 법정변론 경연대회가 매년 개최되고 있다. 1887년 오늘 전북 순창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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