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겨서 뜨는 '외모의 역설' 이면은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1980년대를 주름잡은 코미디언 고 이주일의 유행어다. 30여 년이 흐른 최근에도 닮은꼴 유행어가 나온다. "저는 못생기지 않았습니다." KBS 개그콘서트 '희극여배우들' 코너의 박지선이 그 주인공. 공통점은 무엇일까? 둘 다 못생긴 외모를 거론한 덕분에(?) 큰 인기를 누렸고, 또 누리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 외모가 아닌 출중한 개그 실력에 자연스레 초점이 맞춰진다.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흔하고 매력 없는 미남'미녀보다는 개성 넘치는 못난이가 각광받는다는 역설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얼짱 시대를 사는 '얼꽝'들의 유쾌한 반란을 살펴봤다.
◆'얼꽝 시대' 여는 대중매체 속 못난이들
얼꽝들로만 구성된 특공대가 TV 안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MBC 간판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멤버들이다. 유재석'박명수'정준하'정형돈'노홍철'하하'길이 그 주인공. 못생긴 연예인들 사이에 미남'미녀 연예인 몇 명 정도는 꼭 집어넣어 시청률을 붙잡아두는 것이 예능 프로그램의 공식이다. 일곱 난쟁이의 재간을 즐기면서 백설공주의 미모를 관람하는 것도 놓치지 않으려는 시청자들의 심리를 공략한 것.
하지만 무한도전은 과감하게도 출연진을 전부 못생긴 30, 40대 아저씨들로 구성했다. 결과는 대성공. 같은 시간대 다른 예능 프로그램이 폐지와 신설을 거듭했지만 무한도전은 7년 넘게 장수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결은 간단하다. '재미'다. 그리고 다른 판박이 예능 프로그램과의 '차별화'다. 무한도전 김태호 PD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멤버들에게 특수의상을 갖다 줬더니 못 입겠다고 했다. 창피해서가 아니었다. 웃기려면 옷이 더 꽉 끼어야 한다고 교체를 요구했다"며 "멤버들이 아이템 기획과 관련해 수시로 아이디어와 의견을 낸다. 7명의 PD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셈이다"고 무한도전의 성공 비결에 대해 자평했다.
그렇다고 "못났으니까 노력이라도 해야지"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요즘 대중매체는 못난 외모가 오히려 흥행 코드다. 다시 무한도전을 살펴보면 못생겼다고 평가받는 연예인들을 모아 '가장 못생긴 순위'를 가린 '못생긴 친구를 소개합니다'(못친소) 특집이 최근 화제를 모으며 특집 3회분이 연속으로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을 정도. 비슷한 사례는 개그콘서트의 '네 가지' 코너다. 키 작고, 뚱뚱해서 외모가 못난 것은 물론 인기 없고, 지방 출신(촌놈)인 것 등 각각 못난 구석을 지닌 네 남자의 스탠딩 코미디다. 가장 인기 있어야 차지한다는 개그콘서트 마지막 코너로 자리 잡으며 요즘 승승장구 중이다.
잘생긴 왕자와 예쁜 공주, 그리고 멋진 영웅들만 주인공을 차지했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도 못난이들이 대세다. 애니메이션 '슈렉'(2001)의 주인공 슈렉은 못생긴 괴물이고, 아름다운 피오나 공주도 실은 밤만 되면 흉측한 괴물로 변한다. 그럼에도 슈렉과 피오나 공주는 진실된 사랑만으로 결혼에 감동적으로 골인한다. 비주류였던 못난 악당들도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며 밉지 않은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올해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먹왕 랄프'는 1980년대 미국 인기게임 속 악당을 재발굴해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이다. 이야기는 악당 랄프가 자신이 등장하는 게임이 오락실에서 퇴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여정을 펼치는 감동 코드다. 이런 분위기에 영화 '반지의 제왕'에 조연으로 등장했던 키 작은 호빗 '빌보 베긴스'도 올해 개봉한 '호빗: 뜻밖의 여정'에서 당당히 주인공을 차지했다. 다른 영화에서 멋진 용사들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나운 용을 무찌르고 빼앗긴 왕국을 구하러 간다.
◆못난 외모, 뒤집으니 실력이 보인다
우리 영화계도 요즘 얼꽝 배우 전성시대를 맞이했다는 분석이다. 오달수'유해진'고창석 등 외모는 못났지만 연기는 일품인, 그래서 미남 배우들이 맡고 싶어도 맡지 못하는 개성 넘치는 배역을 도맡고 있는, 충무로 대표 감초 배우들이 각광받고 있는 것. 영화 '방가방가' '광해' 등에서 개성 넘치는 연기로 주목받은 배우 김인권은 얼마 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외모 콤플렉스로 성형수술도 생각했었다. 외모 때문에 대학에서 연기가 아닌 연출을 전공했고, 연기를 선택한 이후에도 근사한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며 "하지만 요즘은 외모 덕분에 매력적인 배역을 맡고 있다. 못생긴 것으로는 나를 따라올 배우가 국내에 없다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대중매체 바깥세상을 살펴봐도 못난 외모가 곧 실력을 방증하는 사례가 많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 역도 75㎏ 이상에서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낸 장미란 선수의 몸매는 미국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챔피언의 몸매'로 선정됐다. 자기 종목에 가장 적합하게 발달한 몸을 지닌 최정상급 선수 5명 안에 든 것이다. 같은 체급 선수들 중 비교적 가벼운 몸무게를 지닌 장미란 선수의 강점으로 튼튼한 근육과 뼈, 그리고 긴 허리를 타고 난데다 후천적 노력으로 갖춘 튼튼한 하체가 꼽혔다. 여성의 아름다운 몸매라 하면 다이어트와 약물 섭취 심지어는 지방흡입 수술까지 해서 만들어낸 가냘픈 S라인 몸매만 떠올리는 한국 사회에 적잖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부분.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발을 가진 발레리나, 강수진 씨도 있다. 마구 뒤틀린데다 피멍으로 얼룩진 못난 발에는 하루 19시간 지독한 연습이 남긴 고통과 1999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를 받는 등 세계 최고의 무용수 반열에 올라선 영광이 함께 담겨 있다.
◆못난 게 못난 게 아닌 먹을거리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 이 구절은 소비 시대인 요즘 조금 변주할 여지가 생겼다. '보기 좋은 떡은 비싸다. 하지만 맛과 영양이 전혀 차이 없는 보기 못난 떡은 저렴하다.' 불황 분위기가 지속되며 못난이 농수산물이 인기를 얻고 있다. 재배 과정에서 덜 자랐거나 출하 과정에서 생긴 흠집 때문에 상품성이 떨어지는 농수산물이 많다. 온'오프라인을 통해 정상 제품 대비 70% 정도까지 저렴한 못난이 농수산물이 나오면서 먹을거리의 외모를 따지지 않는 합리적인 소비자들이 몰리고 있다.
최근 온라인 쇼핑몰 '옥션'에서 올해 히트상품 10선을 선정했는데 4위가 다리 수가 부족하거나 찢어진 오징어, 알이 작은 전복, 태풍이나 장마 피해를 입은 낙과 등 못난이 농수산물이었다. 지난해 대비 판매량이 60% 이상 증가한 것이다.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낙과다. 즙을 내서 먹을 경우 겉모양은 크게 상관이 없어 '주스용' 명칭이 붙은 못난이 과일이 많이 팔린다. 덜 자란 농수산물은 '미니 새송이버섯' '꼬마 전복' 등 깜찍한 이름을 얻어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상품성이 없는 농수산물을 헐값에 판매하거나 버리기까지 했던 농'어민들이 새로운 유통 판로를 확보해 추가 소득을 올리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외에도 원래부터 외모가 못난 실력파 먹을거리가 자연에 적잖다. 못생겨서 맛과 영양이 좋다는 인과 관계는 확인이 힘들지만 못난 외모가 맛과 영양을 과소평가하게 만든 측면은 크다. 못난 외모를 숨기려 바다 깊숙이 헤엄치며 사는 물고기 두 마리를 소개한다.
먼저 '아귀'가 있다. 별명이 '바다의 종합영양제'다. 저지방 저칼로리에 노화 방지는 물론 성인병을 예방하는 다양한 영양소가 함유돼 있다. 일본에서 별식으로 먹는 아귀의 간은 '사르르' 녹는 맛과 질감으로 '바다의 푸아그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푸아그라'는 세계 3대 진미인 프랑스의 거위 간 요리)
못생긴 것으로 아귀에 버금가는 '물곰'(물메기)은 별명이 '해장의 왕'이다. 물곰국은 원래 밤새 술 마시고 쓰린 속을 달래려 뱃사람들이 즐겨 먹던 해장국이다. 울진 등 경북 동해안 지역에 가면 물곰국 잘 끓이는 맛집이 많다.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는 물곰에 대해 '살이 아주 연하고 곧잘 술병을 고친다'고 나와 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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