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가 아닌 폼클렌징으로 깔끔하게 세안을 한 뒤 피부 타입에 맞는 기초 화장품을 스킨에서 아이크림까지 세심하게 바른다. 자외선 차단제가 포함된 비비크림을 가볍게 바르고, 컨실러로 전날 밤의 숙취로 심해진 다크서클의 흔적을 깨끗하게 감춘다. 섀도로 콧대를 높여주고 아이라인으로 눈매를 또렷하게 만든다. 때때로 거울을 보면서 화장을 고친다.'
위의 글은 '미스 여'의 일상이 아닌 화장하는 '미스터 남'의 모습이다. 화장을 하는 남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화장이나 패션을 통해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남자를 뜻하는 '그루밍족'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로 미용이나 패션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오랫동안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잣대로서, 여성들만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져 왔던 화장의 영역이 이제 더 이상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누군가가 사다준 화장품을 수동적으로 사용하던 남자들이 화장품 소비에 있어서도 능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화장하는 남성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지는 않다. 일상에서 화장하는 남자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의 고민을 털어놓는 한 TV 토크쇼의 소재로 등장할 만큼 심각한 고민거리가 된다. 남자가 화장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나 주변의 누군가가 될 때는 용납이 안 된다는 얘기다. 긍정적으로 허용되는 경우는 방송 출연을 하는 연예인이나 패션, 뷰티 비즈니스 분야 종사자 등 제한적이다. 하고 싶어도 주변의 눈과 사회적 통념 때문에 드러내놓고 표현할 수 없다.
화장의 역사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나 회화의 역사보다 길다. 하지만 지금처럼 화장이 여성들의 고유 영역이 된 것은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근대화가 이루어지면서 남녀의 역할이 안과 밖으로 명확하게 구별되면서부터이니까 200년이 채 안 된다. 그 이전에는 남자도 화장을 했다는 얘기다. 화장의 기원은 오늘날 문신과 유사한 형태로 얼굴이나 몸에 그림과 장식을 한 모습을 고대의 벽화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로 주술사와 같이 신과 교통할 수 있는 신분, 즉 남녀의 구분이 없었다.
지금과 유사한 화장의 형태나 기록이 남아있는 것은 고대 이집트 시대다. 그 당시의 화장은 남녀 모두 검고 길게 늘어뜨린 눈썹, 물고기 모양의 눈매, 붉은색 염료와 가발 등을 사용한 화려한 모습이었으며, 주로 주술적이거나 의학적인 목적으로 귀족이나 성직자층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고대 그리스'로마시대 남자들도 목욕과 마사지를 즐겼으며 머릿기름, 향유 등으로 치장하는 것이 유행했다고 한다.
바로크시대 남자의 화장은 절정에 달한다. 백묵으로 뽀얗게 분 화장한 얼굴에 장밋빛 볼 화장, 입술 연지까지 여자들의 화장과 흡사했다. 베르사유 궁정에서 벌어지는 연회에 참석하는 모든 이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과도한 가발 장식에다 애교 점까지 짙은 화장이 요구되었다. 치마에 흰색 타이츠까지 신은 이 시대 카사노바들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본 기억이 있으리라.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사대부의 경우 흰 피부와 고운 손을 선호해 분세수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분세수란 쌀뜨물을 세숫물로 사용하여 피부를 곱고 희게 보이게 하는 것을 말하는데, 춘향전에서 이도령이 춘향이를 만나러 갈 때 분세수를 했다는 대목이 있다. 오늘날 BB크림의 효과와 마찬가지로 분세수가 이도령을 '꽃미남 이도령'으로 변신할 수 있게 했으리라.
이제 남자가 하는 일, 여자가 하는 일, 성별에 따른 직업의 구분도, 역할 구분도 없어지고 있다. 남자들의 외모도 주요 경쟁력이 되는 시대인 만큼 타인들의 시선이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이나 욕구를 표현하고 즐길 수 있는 권리가 남자들에게도 주어져야 한다. 영화 늑대소년이 스토리나 작품성이 그다지 뛰어나진 않지만 관람객 70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도 다 예쁜(?) 송중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남자도 예뻐지고 싶은 욕망이 있다. 사랑받는 송중기가 되고 싶다. 빅뱅의 G드래곤처럼 스모키 메이크업을 하고 섹시한 남자로 주목받고 싶다. 이제 선크림을 떡칠한 모습의 배 나온 아저씨들에게도 매력적인 얼굴의 모습으로 단장할 수 있는 화장 교육을 허락해야 한다.
남자에게 화장을 허(許)하라.
이현주/대구보건대학교 뷰티코디네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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