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맛있게 먹기] 웰 메이드 플레이

입력 2012-12-13 14:05:17

뛰어난 플롯과 행동의 논리적 구성이 빚어낸 작품

전문적인 연극 용어 중에서 '웰 메이드 플레이'(well-made play)라고 부르는 '잘 짜인 극' 혹은 '잘 만들어진 극'이라는 개념이 있다. 웰 메이드 플레이는 뛰어난 플롯과 행동의 완벽한 논리적 구성에 의해 훌륭하게 만들어진 희곡에 붙여진 이름으로 19세기부터 사용되었다. 이는 스크리브(1791~1861)가 최초로 사용했다고 한다. 연극을 전공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이는 주로 희곡이라는 대본 자체의 완결성을 중심으로 말하는 개념이다. 물론 이론적인 개념이다 보니 현재는 현장에서 그리 많이 사용하는 개념도 아니고 관객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개념도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개념인 것은 분명하다.

웰 메이드 플레이라는 이론적인 개념과는 의미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연극은 웰 메이드 플레이일 수밖에 없다. 연극제작진이 원하는 것도 일반관객이 원하는 것도 모두 웰 메이드 플레이, 즉 잘 만들어진 극인 셈이다. 이는 희곡의 완성도를 넘어 공연의 완성도를 포함한 개념, 즉 연극 전반의 완성도나 완결성으로까지 확대해서 해석해도 무리가 없는 개념이다. 오히려 그것이 웰 메이드 플레이라는 용어 자체의 의미와 더 잘 맞아떨어지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곡에 국한되어 논의되었던 웰 메이드 플레이라는 최초의 의미가 현재는 조금 다른 의미 아니 작품성이라는 조금 더 확장된 의미로까지 해석되기에 이르렀다.

연극제작진이나 관객이 바라는 것은 결국 웰 메이드 플레이다. 좋은 작품, 완결성 있는 작품, 완성도 높은 작품, 한마디로 좋은 작품을 만들고 좋은 작품을 보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점이 같을 수밖에 없다. 누군들 잘 만들어진 극을 보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웰 메이드 플레이라는 잘 만들어진 극의 의미 속에는 다른 뜻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 정확하게 계산이 되어 논리적으로 구성된 대본은 한 치의 오류도 없고 정확하게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플롯과 행동이 하나처럼 잘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한 완결성이 어쩌면 숨이 막힐 정도로 반듯한 사람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조금의 허술한 점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사람 냄새가 나게 만들어서 매력적인 사람이 있는 것처럼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구성되지 않은 독특함을 무기로 매력적인 희곡도 있을 수 있다. 이론적으로 잘 구성해서 잘 만들겠다며 만든 웰 메이드 플레이가 오히려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에서 느끼는 감정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수많은 작가의 손을 거치고 공동회의를 통해서 구성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면 이야기가 논리적으로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며 인물들의 행동과 플롯의 조화는 기가 막힐 정도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분명히 웰 메이드 플레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할리우드의 대형 자본이 투입된 영화들의 특징은 대본작업에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마치 건축공학 전공자처럼 대본을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구성하는 작가들을 팀으로 구성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대본은 큰 구성부터 세부적인 구성까지 어느 것 하나도 빈틈이 없을 정도로 모두 맞물려 있으며 그것은 모두 클라이맥스라는 절정을 보여주기 위해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다. 대본의 구성이라는 짜임새와 인물의 성격과 행동 등은 마치 논문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논리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잘 짜인 대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 대본을 바탕으로 유명한 배우의 명연기와 화려한 볼거리로 세계를 장악한다. 하지만 유명배우와 볼거리를 제외하고 나면 왠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는 재미가 있지만 매력적이지 않다고 느끼는 관객들이 있다. 물론 연극의 대본은 플롯과 행동 등이 논리적으로 잘 엮여있는 웰 메이드 플레이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끔찍할 만큼 논리적인 구성은 오히려 관객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대본은 수학공식처럼 정확하기보다는 "왜?" 하고 물음을 던질 수 있는 여백이 조금 더 눈길을 끌 수 있는 예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독특함이 없거나 기계적으로 너무 잘 짜인 극이 오히려 매력을 반감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의 조화를 통한 진정한 의미의 웰 메이드 플레이는 반드시 필요하다.

안희철(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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