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신공항이 필요 없다는 그들

입력 2012-12-13 11:24:19

수도권이 중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어이없다. 가뜩이나 지방에 가면 적자 공항투성인데 10조 원이나 들여가며 그런 공항을 하나 더 만들어서 어쩌겠느냐는 것이다. 동남권 신공항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그들의 주장에는 KTX 타고 와서 비행기로 갈아타면 되는데 왜 촌티를 내느냐는 비아냥이 담겨 있다. '가까워서 편리한' 인천공항을 이용하는 그들에게 영남권 신공항은 애물단지다. 지방민들에게 신공항은 사치에 가깝다. 현 정부가 신공항 백지화를 선언한 것도 겉으론 경제성을 내세웠으나 속내엔 수도권 중심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대구'경북'경남'울산과 부산의 신공항 유치 경쟁을 지역이기주의로 몰아붙인다. 영남권 1천300만 국민은 국책 사업을 통해 떡고물이나 챙기려 드는 지역이기주의자들이다.

그들은 또 정치인들이 경제성이 없다고 결론 난 신공항을 다시 들먹이는 것은 신공항으로 표를 사겠다는 장사꾼 정치라고 몰아붙인다. 국토해양부는 신공항 용역비 10억 원을 신청했다 누구에게 잘보이려고 하느냐는 핀잔만 들었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춤을 추고 국토부가 장단을 맞춘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선 후보들에게 노골적으로 신공항을 공약하지 말라고 협박을 했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협박이 먹혔다. 신공항은 반드시 필요한 만큼 꼭 건설하겠다던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대선 공약이 어정쩡해졌다. 박근혜 캠프는 지역별 대선 공약에서 신공항 건설을 슬며시 제외했다. 그래 놓곤 대구 정책 공약 설명회를 하면서는 신공항 건설을 1번에 올렸다. 대구'경북뿐 아니라 부산'경남과 울산 공약에도 신공항은 빠졌다. 다만 공약집 123쪽에 '100% 국민 행복과 국민 대통합을 위한 지역 균형 발전'의 8대 핵심 정책의 하나로 거론했을 뿐이다.

문재인 캠프도 마찬가지다. 민주통합당 선대위가 내놓은 공약에는 신공항이 아예 빠졌다. 대구'경북 공약에도 신공항은 언급돼 있지 않다. 내년이면 누가 되건 대통령이 되어 일을 시작해야 함에도 중앙 예산 확보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14곳의 지방 공항이 있다. 이 가운데 김포'제주'김해 등 3곳을 제외한 11개 공항은 5년 연속 적자다. 519만 명이 이용하도록 설계된 무안공항은 올해 8월 현재 7만 1천 명만이 거쳐 갔다. 2003년 완공했던 울진공항은 문도 못 열어보고 비행 교육 훈련센터로 용도를 바꿨다. 예천공항은 아예 폐쇄됐다. 신공항이 곧 지방 공항이라는 인식을 가진 그들에게 이런 뉴스는 호재다. 동남권 신공항은 제2, 제3의 울진공항이요, 예천공항일 따름이다.

하지만 남부권 국민들이 염원하는 것은 이런 애물단지 지역 국제공항이 아니다. 국내선 위주나 동남아를 겨냥한 지방 거점 공항이 아니다. 인천공항을 보완하고 유사시 대체할 수 있는 제2의 관문 공항이다. 국토 동남권, 나아가 남부권에 초광역권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동북아의 제2의 허브 공항을 요구한다.

동남권엔 1천300만 인구가 반경 100㎞ 이내에 밀집해 살고 있다. 연간 240만 명이 6천억 원의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며 인천공항을 드나든다. 범남부권으로 확대하면 비용은 연간 1조 원까지 늘어난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소화되는 항공 화물의 24~32%는 동남권에서 나온다. 인천공항 개항 후 안정된 정착엔 남부권 국민들의 희생도 일조했다.

공항 개발에는 적어도 15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하다. 지금 준비를 시작해도 2020년이나 돼야 신공항을 이용할 수 있다. 장차 늘어나게 될 항공 수요의 변화와 국제적인 여건 변화 등을 고려할 때 신공항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국토 균형 개발을 위해서도 신공항을 준비해야 할 시기다.

이런 공항의 유치 경쟁을 두고 지역이기주의 운운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다.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을 보더라도 좋은 사업을 가져가려는 경쟁은 치열하다. 지방정부 간 선의의 유치 경쟁을 지역이기주의로 몰아칠 수는 없다. 백년대계로서의 국책 사업을 과열 경쟁을 이유로 포기할 일은 더욱 아니다. 합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조정을 함으로써 지방정부 간 갈등을 해소해 주는 것이 중앙정부의 역할이다. 동남권 신공항은 정부가 정책 결정을 늦추면서 오히려 지역 간 갈등을 부추겼다.

정치인들이 대선을 앞두고 지역에 내려와 신공항을 약속하는 것은 표를 사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민심임을 알기 때문이다. 신공항이 필요 없다는 그들이 분명히 새겨야 할 사실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