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1938년 히틀러가 포퍼의 고향 오스트리아를 공격하면서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책 제목에 나타나 있듯이, 포퍼는 열린 사회의 보편적 가치는 전체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라는 점을 역설한다. 대통령 선거를 불과 10여일 앞두고, 이 책의 제목을 빌려서 이른바 '열린' SNS 사회를 해치는 '적'들이 무엇인지 찾아보자.
SNS의 주요 기능은 검색, 소셜, 참여이다. 검색이란 궁금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보를 찾는 행위이다. 소셜은 검색한 정보를 친구들과 교환하고 주변에 유통하는 것이다. 참여란 검색과 소셜 과정을 통해서 획득하고 상호 교류한 메시지를 바탕으로, 특정 이슈에 대해 심리적으로 관여하거나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SNS의 3가지 기능이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 따뜻한 디지털 사회가 구현될 수 있다. 그럼 무엇이 열린 SNS 사회를 가로막고 있는가.
첫째 양질의 정보가 '검색'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그 재료가 되는 메시지들이 균형 있게 생산될 필요가 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분야에서 잘 알려진 원칙으로 GIGO라는 것이 있다.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 (Garbage In, Garbage Out). 인터넷에서도 입력된 정보가 부실하면 당연히 엉터리 정보가 검색된다. 그런데 당장 트위터에서 대선 후보들의 이름을 검색해 보자. 소위 SNS 알바들이 올린 메시지들이 과도하게 많아서 여론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들다.
두 번째 기능인 '소셜'을 구현하는 데는 자유롭고 원활한 네트워킹이 관건이다. 민주적 네트워킹을 위해선 검색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다양한 친구들이 주변에 많아야 한다. 그런데, SNS가 지닌 '필터링' 기술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유사한 친구와 뉴스 매체만을 구독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이러한 유유상종 현상은 세대 간, 지역 간, 계층 간 갈등과 대립을 낳고 결과적으로 사이버공간의 분열을 초래한다.
마지막으로 '참여'는 SNS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온라인에서의 참여는 시'공간적 제약을 벗어나 이슈를 제기하고 확산하는 데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바쁜 현대인에게는 편리하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렇지만 참여가 일시적 관심이나 상황적 관여에 그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된장녀' '개똥녀' '국물녀' 등의 사건에서 보듯이 책임은 없고 일방적 여론몰이로 SNS 마녀사냥이 될 수 있다. 어떤 이슈에 대한 지속적 관여가 이루어질 때 사회적 자본이 증가한다. SNS에만 의존한 이른바 '클릭티비즘'(Clicktivism, Click과 Activism의 합성어)은 근본적인 사회 변화와 개혁을 추동하기에 역부족이다.
대선 국면에서 열린 SNS 사회를 위협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누리꾼들은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상대방의 주장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면서 짧은 메시지로 의사소통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런 경향을 악용하여 허위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사람들이 있다. SNS에서의 메시지는 종종 원래의 상황이나 메시지가 변형되면서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받아들여진다. 다나 보이드(Danah Boyd)는 이것을 '부서진 전화기 효과'라고 불렀다. 짧은 메시지만이 오가면서 내용은 사라지고 소문만 남는다. 첨예한 대결 구도가 형성된 이번 대선 국면에서 특정 후보에 대한 교묘한 여론 유도 혹은 의도적 비방이 난무하고 있다. 원래의 의도와 다른 내용이 확산되거나 '묻지 마'식 퍼 나르기로 한쪽 편의 주장이 급속하게 퍼질 수 있다.
SNS의 영향력이 커져가자 그 역기능도 증가한다. 어둠을 틈타 침투하는 스파이처럼, 역기능이 우리의 일상에 퍼져 나가고 있다. 특정 후보의 입장을 대변하는 SNS 여론조사가 언론 매체를 통해서 퍼진다. 선거 캠프는 온라인 갈등의 해소보다 오히려 후보에게 돌아올 이득을 먼저 계산한다. 오로지 1등만이 살아남는 선거에서 인터넷 자유를 위협하는 적들은 갈수록 많아진다.
SNS의 고유한 기능을 되살리고 인터넷 자유를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은 투표이다. 이번에는 마우스만 클릭할 것이 아니라 투표장에 가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자.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는 자가 미래가 아니라 투표에 참여하는 자가 미래이다.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사이버감성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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