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충남 경계 밟으며 장쾌한 능선 조망
# 지척인 듯 천등산'대둔산, 또 다른 장관
백암산(白岩山'650m)은 충남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 대양리와 남이 자연휴양림이 있는 건천리 사이에 위치한 산이다. 백암산 정상 남동쪽 방면은 수십 길 바위벼랑이다. 그 아래 마을에서 올려다보면 바위벼랑에 햇살이 비치면 하얗게 보인다고 해서 '흰바위산'으로도 불린다.
백암산은 서쪽에 솟은 서암산과 함께 이름이 말해주듯 바위봉우리로 매의 형상을 하고 있다. 산줄기는 한국전쟁 당시 전략적 요충지로서 산속으로 숨어든 빨치산과 이들을 격퇴하려는 군경 토벌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치러진 곳이다. 이 산에서 양측 모두 수많은 이들의 고귀한 생명이 피를 흘리며 스러졌다.
잣고개 또는 육백령이라고 불리는 고개에는 작전을 기념하기 위한 전승탑과 충혼비가 세워졌다. 당시 군사작전 용어로 흔하게 쓰였던 '고지'라는 지명이 일반화되면서 지금까지 국립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에는 백암산이라는 이름 대신 '육백고지'로 표기되어 있다.
전승탑을 지나면 백제 말기에 축성되었다가 백제의 멸망으로 허물어진 백령성터의 흔적이 남아있다. 백령성에서 내려서면 임도가 나타나고 가로질러 통나무 계단을 통해 지능선을 오르면서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된다. 숨이 턱에 차도록 된비알을 치고 오르면 육백고지 주능선에 닿는다. 오른쪽 능선은 서암산으로 가는 등산로. 표지기를 따라 왼쪽 능선으로 향한다. 칼날같이 깎아지른 절벽 능선에 의연하게 서 있는 노송은 그날의 참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청하기만 하다.
멀리서 봐도 뚜렷한 독수리의 부리처럼 생긴 독수리봉과 600m봉을 지나면 사방팔방으로 조망이 막힘없이 터진다. 서쪽으로는 가야 할 선야봉이 손에 집힐 듯하고, 뒤돌아선 북서쪽으로는 암벽으로 형성된 대둔산의 거대한 바위병풍과 똬리를 튼 천등산이 조망된다. 동쪽으로는 충남에서 가장 높은 서대산(904m)이 위세 좋게 우뚝하고, 동남쪽으로는 덕유산의 장쾌한 능선이 이어지고, 남으로는 연석산과 문필봉, 운장산과 사달산 등의 능선이 선명하다.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을 즐기며 등산을 하노라면 낮은 자락에 가지런히 세워놓은 붓끝처럼 뾰족하면서 샛노랗게 물든 낙엽송이 아쉽게 가버린 가을을 위로한다. 백암산 정상을 지나면 오른쪽 자연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전적지여서일까. 날 선 백암능선에 헬기장이 세 개나 되는 것이 이채롭다.
길은 점점 아래로 푹 가라앉았다 흰바위재를 지나 다시 서서히 높아진다. 백령성에서 출발한 지 3시간여 만에 713.5m 봉에 오른다. 금남정맥 길과 신선봉. 선야봉의 경계지점으로 제대로 된 이정표가 없어 자칫하면 지나칠 수 있어 주의해야 할 지점이다. 신선봉과 선야봉을 가려면 삼거리에서 오른쪽이고, 직진하면 금남정맥 분기점이다.
신선봉으로 오르는 길은 약간 가라앉았다가 오르기를 춤추 듯한다. 전북과 충남의 경계를 밟으며 좌우 조망을 두루 견주어가며 산행하는 맛도 썩 괜찮다. 떨켜로 나뭇가지와 이별한 굴참나무 잎새로 종아리까지 푹푹 쌓인 길을 헤엄치며 간다. 앙상한 숲에 호위하듯 적당한 간격으로 서 있는 잘생긴 소나무가 두드러져 보인다. 신선이 노닐며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봉에는 정상석 대신 나무판자에 쓴 표지기를 나무에 매달아 놓았다. 신선봉 오른쪽 아래로 오십폭포로 내려가는 하산로가 있다.
선야봉 주능선은 오른쪽이 동쪽으로 금산군 남이 자연휴양림이고 왼쪽이 서쪽으로 전북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로 충청과 전라의 경계를 이룬다. 고당리 마을에서는 신선봉을 촛대봉이라고도 부른다. 고당 실기에 의하면 300여 년 전 이 산에서 선녀가 내려와 터를 닦고 집을 지어 살았다는 연유로 마을 이름을 고당이라 하였고, 이 고당(할미마당) 앞에는 말을 타고 다니거나 가마를 타고 지나가지도 못하였다고 한다.
선야봉 남쪽의 싸리재는 옛날 신라와 백제를 연결했던 주요 통로로, 주위에 탄현성이나 백령성지 등의 백제 유적지가 아직 남아 있다. 산과 봉우리, 하늘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첩첩산중의 산이다. 옛날에는 약초를 캐는 심마니들이나 찾았다고 한다.
신선봉에서 선야봉까지는 큰 기복 없이 20여 분 만에 도착한다. 역시 나무에 매단 이정표가 있다. 지나온 독수리봉과 백암산이 지척이고, 마치 코앞에 다가선 듯한 천등산과 대둔산이 설악산 울산바위를 연상시킬 만큼 장관이다.
여기서 자연휴양림이 있는 느티골로 하산을 한다. 정상에서 살짝 내려서면 '신선풀무대'라는 암봉이 있다. 생김새가 화롯불에 바람을 불어넣는 풀무를 닮았는데 신선이 이곳에서 쇠를 달구느라 풀무질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다소 허황하기는 하지만 의미를 부여한 전설에 상상의 나래를 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하산 길은 제법 거칠고 가파르다. 흡사 칼날능선을 방불케 한다. 가파른 길에 아무런 인공 설치물이 없어 한겨울이나 비가 많이 내릴 때에는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느티골 자연휴양림에서 보면 선야봉에서 신선봉을 거쳐 백암산, 서암산이 원을 그리듯이 자연 성벽처럼 둘러쳐져 있다. 외부의 접근이 쉽지 않은 오지라는 게 느껴진다. 자연휴양림이 생긴 이후부터는 느티골 입구까지 운행하는 버스 편이 생기고 자가용도 보편화되어 자연휴양림 방면에서 선야봉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등산의 시작점은 잣고개라 불리는 백령고개와 남이 자연휴양림이다. 사면팔방으로 터지는 광활한 조망과 아기자기한 등산을 원한다면 육백령을, 부담 없는 산행과 삼림욕이 목적이라면 남이자연휴양림을 권한다.
어느 곳에서 등산을 시작하더라도 개인적인 페이스에 따라 봉우리와 코스를 조절할 수 있다. 육백령에서 독수리봉. 백암산. 신선봉. 선야봉을 완주하는데 5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돌아오는 여정에 30분 거리에 있는 금산 인삼시장에 들르면 인삼튀김과 막걸리를 맛볼 수 있고 구매가 가능하다.
글·사진 양숙이(수필가) yanggibi60@hanmail.net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