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에게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는 날이 다가오기에 지난 주말엔 책장 정리를 시작했다. 언젠가 나의 마음과 의식을 사로잡았을 책들이 이제는 남아있는 책과 보내질 책으로 운명이 엇갈렸다.
내 책장을 떠나 새로운 주인을 찾아가는 책들의 시간여행. 요즘은 추억 속 풍경이 되어가는 헌책방이나 고서점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책을 찾기도 하고, 잃어버린 저자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또 적당한 거리의 책 친구들을 마주치곤 하던 동네 어귀의 작은 서점도 책을 사러 나가기에 편한 장소 중 하나였다. 생활패턴이 바뀌어가면서 책을 사고파는 패러다임도 달라졌다. 낡은 책 향기 물씬하던 헌책방이나 동네 작은 서점에 발품 팔며 찾아가면 그곳에는 가끔 진귀한 책들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었고, 상태가 훌륭한 참고서나 해묵은 사전이 착한 가격으로 반겨주기도 했다.
도쿄에 가면 들르는 곳 중 하나인 '진보초'도 고서 마니아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책방들의 집합소이다. 에도시대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그곳은 세계 최대 규모의 고서점 거리라는 명성답게 거리를 따라 밀집한 작은 규모의 전문서점마다 은빛 노인들, 런치타임을 이용한 직장인들, 학생들 등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거렸는데 그 모습이 무척 신선했다.
프랑스의 베슈렐도 책과 관련된 흥미로운 곳이다. 한때는 대마를 꼬아 짜는 선박용 밧줄로 이름난 곳이었지만 1960년대부터 시작된 농촌 대탈출의 바람에 700명 남짓한 주민이 거의 떠나고 농기구 부품을 수리하거나 주변의 돼지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몇만 남게 되었을 때 이 마을에 '책마을'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이루어졌다. 프랑스의 첫 번째 책마을이었던 만큼 국립도서센터와 시청 등에서 서적상이 그곳에 정착하는 데 필요한 홍보와 자금 등 여러 지원책을 마련해주었다. 이 마을의 숨은 매력에 끌려 많은 사람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헌책을 수집, 보관하여 대도시와 연계하는 방식을 도입하면서 마을 관문에 있던 서점이 이곳을 거점으로 삼고 시내 서점을 지점으로 삼을 정도로 사정이 역전되기도 했다.
오랜 역사를 가진 고서점 거리나 통째로 사라질 뻔했던 마을의 변화를 보며 아주 유용한 교훈을 얻는다.
"달빛 좋은 밤의 책 낭송회, 유년의 기억 속 저자를 만나는 헌책방 거리, 마을축제처럼 열리는 책 장터, 먼 곳에서 찾아오는 우리 동네에만 있는 전문서점…."
눈이 내릴 것처럼 하늘빛이 흐린 겨울날, 책과 사람이 동행하는 상상화는 내 손안의 찻잔만큼이나 따뜻하다.
나윤희<출판편집디자인회사 홍익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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