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아웃' 공포, 현실로 다가오나] <2>정부 '에너지 수급 대
정부는 지난달 16일 '동절기 전력 수급 및 에너지 절약 대책'을 발표했다. 수요 관리를 통해 최대한 전력 소비를 아끼겠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산업계 및 전력 전문가들은 "지난해부터 계속된 쥐어짜기식 대책이 이번에도 반복됐을 뿐 근본적인 조치는 빠져 있고 일부 조치는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수요 관리로 수요량 4% 절전
정부 대책의 핵심은 수요 관리를 통해 전력 소비를 최대 320만㎾(전체 수요량의 4% 수준) 줄인다는 것이다.
먼저 계약전력 300~3천㎾ 미만 수요처를 대상으로 '선택형 최대피크 요금제'를 도입한다. 내년 1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며 중소기업이나 대형빌딩이 이에 해당한다.
선택형 최대피크 요금제는 전력소비가 가장 많은 피크일(월, 목)과 피크시간(오전 10시~낮 12시, 오후 5~7시)에 전기를 많이 쓰면 3~5배 할증요금을 내도록 하는 제도로 해당 수요처는 기존 요금제와 피크 요금제 중 선택할 수 있다. 실제 피크 요금제 적용 때 평상시 요금은 ㎾당 54.2원으로 기존의 시간대별 차등 요금제(㎾당 60.2원)보다 ㎾당 5.8원을 절약할 수 있다. 하지만 피크타임시(최대부하 때) 전력을 사용할 경우 적용 요금은 ㎾당 최소 410.7원으로 기존(㎾당 152.1원)의 2.5배에 달하는 수준으로 요금이 급등하게 된다.
또 내년 1월 7일부터 2월 22일까지 전기사용량이 3천㎾ 이상인 6천여 개 사업장에 대해 올 12월 대비 전력소비량을 의무적으로 3~10% 줄이도록 규제할 방침이다. 기업별로 의무 감축량에 차등을 두는 것이 지난해와 다르다. 가령 포스코와 현대자동차는 12월 전력 소비량의 10%를 내년 1, 2월에 줄여야 하고 삼성전자 가전 부문은 7% 감축해야 한다.
대형마트, 백화점 등 계약전력 100~3천㎾인 전기 다소비건물은 실내온도 20℃ 이하를 유지해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 300만원을 내야 한다. 3일부터 시행하되 1개월의 계도기간을 거쳐 내년 1월부터 본격적인 단속에 들어간다. 피크시간대(오후 5~7시) 네온사인을 활용한 광고가 업소당 1개씩만 허용되고 문을 열고 난방하는 업소에 대한 단속도 내년 1월부터 진행된다. 관공서와 대형건물의 옥외경관 조명 사용도 금지된다.
공공기관은 실내온도를 18도 이하로 유지하고 개인 전열기 사용도 금지된다. 또 전력예비력이 400만㎾ 밑으로 떨어지면 난방기가 순차적으로 가동이 중단된다.
◆실효성에 의문
전문가들은 올해 절전 대책도 우리나라 전체 전력수요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 부문 대책이 취약하다고 보고 있다. 맑고푸른대구21추진협의회 오영석 사무처장은 "산업 부문은 전기요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니까 선택피크제를 실시한다 해도 실제 얼마나 절감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해와 별반 다른 게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겨울에도 산업체를 대상으로 전기 사용량 의무 감축에 나섰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은 업체가 절반을 넘었다. 올해도 업체들이 정부안을 얼마나 따라줄지 미지수다.
최근 전기 부족의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하는 상업 부문에 대한 대책도 실효성에 의문이 일고 있다. 상업 부문의 전기 수요는 최근 20년 동안 9~10배로 급증해 전체 수요의 30%를 차지한다. 상가나 고층건물 등이 많이 들어서면서 야간에 전기를 사용하는 곳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규제하는 것이 쉽지 않다. 계명대 지구환경학과 김해동 교수는 "상업 부문의 대책이 문을 열고 영업하거나 업소당 네온사인 1개만 사용하기 등인데 가뜩이나 불경기로 손님이 없는 업소들이 얼마나 잘 지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겨울에도 이에 대한 단속이 있었지만 계도나 현장시정 요구 등만 있었을 뿐 과태료는 없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매번 가정용 전기 사용량이 많다며 절전 대책과 캠페인을 펼치는 것이 얼마나 효과를 보고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가정용은 누진제가 있어 전기료가 비싼 편이다. 이 때문에 가정용 전기 사용량이 OECD 국가 가운데 최하급인데도 가정에서의 절전을 강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가정용 전기량은 전체 수요의 12%밖에 차지하지 않는데다 실제 사용량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가정용 전기 사용량을 줄여봤자 효과를 보기 힘들다고 했다.
◆현장의 불만도 만만찮아
지난해부터 계속돼 온 정부의 긴급 대책이 매번 규제와 절약만 강요하는 일방적인 내용이라 현장의 불만이 적잖다. 특히 전기 사용이 매출과 직결되는 업체들과 상가들의 반발이 심하다.
선택형 최대피크 요금제에 대해 일부 지역 기업들은 반발하고 있다. 특히 24시간 생산라인을 가동하는 섬유업체와 내용물의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는 주물, 사출 생산업체의 불만이 팽배하다. 대구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지난해 10% 절전 규제를 실시했던 당시에도 기업들은 형평성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며 "이번 대책 역시 무작정 기업들을 옥죄는 성격이 강해 상당수 기업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섬유업체 대표는 "직기를 멈췄다가 이를 다시 가동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과 초기 불량을 다시 잡아내는 것까지 고려하면 전기를 멈추는 것보다 요금 할증 부과가 더 나을 수도 있다"고 했다.
계약전력이 대용량인 기업체에 부과한 의무 감축 역시 기업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자동차부품 업체 관계자는 "이미 지난해 전력난 이후 정부의 전기사용 감축 요구로 일부 노후 설비와 시스템을 교체하는 등 상당 부분 감축한 상황이다"며 "그런데 또 줄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상가들도 개문난방이나 네온사인 단속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동성로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42'여) 씨는 "사실 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손님들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울며 겨자 먹기'로 문을 열어놓는 것"이라고 했다. 수성구 노래방 업주 박모(40) 씨는 "피크시간 이후에는 1개의 네온사인만 밝힐 수 있다고 하는데 다수 네온사인이 하나의 스위치로 연결돼 있는 경우가 많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다"고 했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이들도 내심 불만이다.
대구시청 한 공무원은 "지난해 겨울 내내 파카에 목도리까지 하고도 덜덜 떨면서 일했다"며 "올해도 똑같은 상황을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전창훈'노경석'김봄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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