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만이 쓴 '선택된 인간'이란 소설이 있다. 군주를 부모로 둔 쌍둥이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주인공은 작은 통에 넣어져서 바다에 버려진다. 어부의 손에 건져진 그는 세례를 받고 수도원 생활을 하던 중 출생에 대한 비밀을 알고 기사가 되어 청혼을 받아 곤궁에 처해 있는 여 군주가 다스리는 나라에 온다. 그의 노력으로 나라는 평화를 되찾고 여 군주와 결혼을 한다.
여 군주가 자기 어머니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이중의 근친상간에 대한 속죄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 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험한 바위섬에서 누더기를 입고 17년간 내리쬐는 태양과 비바람에 방치된 채 바위틈에서 스며 나오는 대지의 젖을 마시며 참회의 생활을 한다. 이후 신의 섭리로 교황에 선택되어 칭송을 받게 되고 여 군주는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 모든 것을 바치며 속죄생활을 하다가 위대한 교황이 출현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죄에 대한 참회의 고백을 위해 두 딸과 함께 로마로 간다. 20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은 사랑과 고뇌와 참회, 은총에 대해 다 같은 형제로서 살아간다.
환자들을 보다 보면 정말로 선택된 인간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을 만난다. 현아(가명)는 태생 후 3개월에 제3 뇌실에 뇌척수액을 무한대로 만들어 내는 맥락총 유두종이라는 종양으로 수술받은 환자다. 너무 어린 나이에 수술을 받아서인지 뇌가 비대칭적으로 성장하고 한 번씩 경련을 한다. 오늘도 나와 현아는 설전을 한다.
"요즈음 경련은 어떻지?" "다 아시면서 왜 물어요." "머리 아픈 것은 어떠하냐?" "다 아시면서 왜 또 물어요." 옆에 있던 엄마가 보기에 안되었던지 거든다. "네가 머리 아픈 것하고 경련하는 것을 잘 말씀 드려야 교수님이 좋은 처방을 해주지." "엄마는? 왜 또 여기까지 따라와서 쓸데없는 간섭을 하지." 역정을 낸다. 현아가 벌써 스물 셋이다. 엄마는 23년을 그렇게 시달려왔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키워가는 부모들을 보면 그들은 신이 선택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사후의 세계가 있다면 신은 분명히 그때 그들에게 큰 축복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가장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자식은 생전에 부모 속을 가장 많이 썩인 자인 것을 중환자실에서 여러 번 보았고, 또한 몽음주자(夢飮酒者) 단이곡읍(旦而哭泣) 몽곡읍자(夢哭泣者) 단이전엽(旦而田獵)(꿈에 술을 마시며 즐거워했던 사람은 아침에 울고, 꿈에 울며 슬퍼한 사람은 아침이 되면 즐거운 마음으로 사냥하러 나간다)라는 장자(莊子)의 글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임만빈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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