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수의 시와 함께] 땅이

입력 2012-12-03 08:00:00

# 땅이 - 양애경

사람 나이 80을 넘으면

땅이 몸을 마구 끌어당긴다

한쪽 다리를 들어

한 걸음 옮기려는 것뿐인데

산을 뿌리째 뽑아 옮기는 듯

그래서 키가 줄고

허리도 허물어진

그저 체중이 45킬로그램 나가는 엄마의 몸이

지나가다 내 팔에 뚝,

걸리기라도 하면,

나까지 땅속까지 끌려들어 갈 것만 같다

깊이 묻혀 다시는 못 올라올 것만 같다

비명을 지르며

나 혼자 멀리멀리 도망쳐버리고 싶어진다

노인과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라 해도…

땅이

마구마구 밑으로 잡아당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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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다보면 희미하게 지나가는 어떤 찰나가 순간적으로 포착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면 '아, 이 느낌이었지' 하며 형체 없는 그 순간이 마차 하나의 몸을 얻은 듯 명쾌해질 때가 있습니다.

팔순이 되신 엄마의 무거운 걸음걸이가 내 몸에 부딪칠 때, 그 아픔을 겪기도 하고 짐작하기도 하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겠습니까. "땅속까지 끌려들어 갈 것만 같다"는 이 말 외에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박현수<시인·경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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