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전신화상 시연 양

입력 2012-11-28 07:48:59

자취방 덮친 화마에 쓰러진 19살 꽃다운 희망

이순희 씨가 화상을 입은 딸 서연 양 옆에서 간호하고 있다. 서연 씨는 자신이 살던 자취방의 도시가스 폭발로 가슴 부위를 제외한 몸의 70%가 화상을 입은 상태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이순희 씨가 화상을 입은 딸 서연 양 옆에서 간호하고 있다. 서연 씨는 자신이 살던 자취방의 도시가스 폭발로 가슴 부위를 제외한 몸의 70%가 화상을 입은 상태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26일 대구 서구의 한 화상전문병원 중환자실. 정시연(가명'19'여) 양이 마치 미라처럼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얼굴은 살갗이 벗겨진 채 화상연고가 덕지덕지 발라져 있었다. 시연 양은 최근 구미 자신의 자취방에서 가스폭발로 온몸의 70%가 3도 화상을 입는 사고를 당한 것. 간호사가 소변봉투를 갈아주는 동안, 시연 양은 약간의 움직임과 접촉에도 비명과 신음을 내며 괴로워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 양의 어머니 이순희(가명'45) 씨는 "딸이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며 비명을 지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불안한 예감과 고통의 나날

이달 8일 오후 8시쯤 시연 양의 어머니 이 씨는 구미에서 일하는 딸의 전화를 받았다. 시연 양은 가정형편이 어려운데다 이 때문에 학교에서 왕따까지 당한 탓에 지난해 학교를 자퇴하고 구미의 한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전화기 건너편에서 시연 양의 우는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시연이가 펑펑 울더라고요. 신발을 사러 구미 시내에 나갔는데, 자기 또래의 다른 친구들은 부모가 함께 가게에 와서 신발을 골라주는데 자기는 혼자 고르다가 너무 서러워졌다더군요. 전화를 끊고 나니 갑자기 머리가 아득해지면서 불길한 예감과 함께 '날이 밝으면 김치와 밑반찬 등을 싸서 찾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길한 예감은 슬프게도 들어맞았다. 다음 날 오전 8시쯤, 이 씨가 일하러 나가려던 찰나 구미의 한 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병원에서는 "따님이 혼자 사는 원룸에서 도시가스 폭발이 일어나 따님이 사경을 헤매고 있다. 곧 대구의 화상전문병원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알렸다.

시연 양의 고통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화상 부위에서 전해지는 피부를 찌르는 듯한 통증 때문에 시연 양은 진통제를 맞고 있어도 늘 고통에 시달린다. 이 통증은 새벽에 잠시 잠잠하다가 새벽 4, 5시쯤 되면 다시 찾아와 시연 양의 잠을 깨운다. 이 때문에 시연 양이 하루에 잠을 편히 잘 수 있는 시간은 고작 2시간 남짓하다. 몸에서 나는 땀과 열기는 또 다른 고통을 안겨 준다. 이 씨는 항상 시연 양의 몸을 젖은 수건으로 식히는 것밖에 할 수 없다. 병원에서도 시연 양이 치료 도중 패혈증이 올 가능성 때문에 치료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이 씨는 "시연이가 밤에도 찾아오는 고통 때문에 매일 울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운다"고 말했다.

◆위암 투병 중인 아버지

가족 중 아픈 사람은 시연 양뿐 아니다. 아버지 정성종(가명'57) 씨는 지난해 위암 3기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이때 그동안 모아뒀던 돈을 거의 다 써버렸다.

이 씨는 "지난해 갑자기 일하다가 쓰러져 병원에 갔더니 위암 3기라며 수술을 해야 한다더군요. 결국, 대구의 대학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비 겨우 내고 나니 생계가 막막해졌어요."

정 씨와 이 씨는 경북 의성군의 한 시골 마을에서 고물 수집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 씨는 지난해 위암 수술을 받은 터라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어서 힘을 써야 하는 고물 수집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다. 이 씨는 "온종일 돌아다니며 폐품과 고물을 모아 팔면 하루에 겨우 2만원 벌까 말까 한데 남편은 위암 때문에 누워 있고, 나는 딸 간호 때문에 계속 병원에 있다 보니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막막한 병원비와 생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연 양까지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서 공황 상태에 빠졌다. 2천만원에 달하는 병원비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바위가 돼 짓누르고 있는 것. 수술비도 문제지만 화상연고나 치료제들이 기본적으로 수십만원씩 들어가는 비싼 제품들인데다가 시연 양이 가슴 부위를 제외한 몸 대부분에 화상을 입은 탓에 치료비가 기본적으로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태다.

치료비로도 숨이 막힐 지경인데 집수리 비까지 부담해야 할 지경에 놓였다. 구미 자취방 주인이 수리견적서를 보낸 것이다. 집주인은 가스폭발로 집이 망가졌다며 수리비 699만원을 요청한 것.

이 씨는 "수리비 때문에 법률상담도 받아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더군요. 결국, 주인에게 '법대로 하시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고 했다.

이 씨에게는 낡은 5t 트럭과 1.5t 트럭이 전 재산인데 1.5t 트럭마저 논두렁을 지나다 빠지는 사고 때문에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한 달 전엔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신청을 했지만, 고물수집을 위해 가지고 있는 트럭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말에 절망에 빠졌다. 이 씨는 "상황이 절박해지면 마지막 생계수단인 트럭까지 팔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몸서리쳐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씨는 절망 속에서도 하루하루 잘 버티는 딸 시연 양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이 씨는 "꽃처럼 피어야 할 인생이 한순간의 사고 때문에 이렇게 돼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다"며 "딸 시연이가 살아서 나을 수만 있다면 목숨이라도 바칠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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