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 등친 '싹싹한' 귀농 부부

입력 2012-11-27 10:49:46

1년 동안 주민들에 사기, 농자재 빌리다 돈도 빌려…농작물 이중 판매후

지난 8월 청송군 부남면의 한 양배추밭을 찾은 농산물 수집상 김모(63) 씨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4천520만원을 주고 매입하기로 한 2만3천여㎡ 규모의 양배추가 밑동만 남긴 채 통째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김 씨는 이미 농작물 주인인 A(53) 씨와 동거녀 B(55) 씨에게 3천720만원을 송금한 뒤였다. 다급해진 김 씨는 마을 주민들에게 A씨 등의 행방을 수소문하다 더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양배추는 이미 청송군 유통영농조합법인에 팔렸다는 것. A씨는 자신의 작물을 이중으로 팔아넘긴 뒤 달아난 것이었다.

A씨와 동거녀가 도망갔다는 소문이 나자 피해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지난해 12월 귀농인 행세를 하며 마을로 들어온 A씨 등은 마을 이장 김모(62) 씨로부터 농자재 구입 명목으로 750만원을 빌렸고, 주민 조모(52) 씨에게는 배추를 대신 키워주겠다며 700만원을 받아 챙겼다. 이 마을에서 A씨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를 한 사람은 3명, 피해액은 5천100만원이나 됐다. 이 밖에 소소한 도움을 줬다가 돌려받지 못한 주민들도 부지기수였다. A씨 등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이웃들에게 각종 농자재를 빌려 농사를 지었기 때문이었다. 30여 가구가 사는 마을 전체가 A씨 등에게 사기를 당한 셈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A씨 부부가 워낙 싹싹하고 붙임성이 좋아 의심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장 김 씨는 "빈집을 사서 이사를 하고 주소까지 옮긴 A씨가 사기를 쳤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허탈해했다.

A씨 등이 귀농인 행세를 하며 사기행각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A씨와 B씨는 2008년 3월 안동시 풍천면 한 마을로 들어갔다. 수박과 멜론 농사에 번번이 실패한 A씨는 이웃 주민 백모(62'여) 씨에게 여동생 아들의 교통사고 합의금을 핑계로 1천만원을 빌렸고, 농사 비용이 모자란다며 3차례에 걸쳐 1천400만원을 더 빌렸다. 또 다른 주민 류모(61) 씨에게는 트랙터 구입비 명목으로 1천만원을 받아가기도 했다. A씨는 이런 방식으로 마을 사람 7명에게 6천940여만원을 빌려 쓰고는 2년 만에 행방을 감췄다.

이들의 범죄 행각은 결국 청송에서 달아난 지 3개월 만에 끝이 났다. 청송경찰서는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이달 22일 이들을 붙잡아 농자재 대금을 빌리거나 농작물을 이중매매하는 수법으로 17차례에 걸쳐 1억2천만원 상당을 가로챈 혐의로 A씨를 구속하고, 동거녀 B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안동 청송'전종훈기자 cjh4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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