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조희팔이라는 유령

입력 2012-11-27 07:46:37

'조희팔 유령'이 한국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조희팔 씨는 2004년 대구 동구 신천동에서 다단계 사업을 시작해 전국으로 사업 기반을 넓혔다. 건강용품 판매 수익금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준다고 꾀었다. 처음엔 투자자들에게 꼬박꼬박 수익금을 나눠주던 조 씨는 2008년부터 사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투자금이 회수되지 않고 조 씨의 회사들이 폐업 신고를 하고 연락두절되자 전국의 투자자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고소'고발이 이어지자 조 씨는 2008년 12월 중국으로 밀항했다. 다른 공범들도 대부분 중국으로 밀항해 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졌다.

사기 사건의 피해는 대구에서 가장 컸다. 다단계 업체 27개 영남권 센터 중 11개가 대구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에 따르면 대구에서만 1만700여 명의 피해자가 나왔다. 대구 시민들은 오랜 불황을 겪고 있는 탓인지 뻔히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투자자들은 최소 수천만원에서 최대 수십억원을 투자했다. 건강용품을 사기만 하면 연이율 35%에 가까운 이자를 받은 투자자들은 배당금을 받자마자 다른 돈까지 마구 끌어들였다. 땅을 팔고 담보로 삼아 대출한 돈을 투자하고 친'인척에까지 권유해 수렁으로 빠져든 사람들은 조 씨의 잠적으로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전국에서 3만여 명이 피해를 당했으며, 자살한 피해자도 1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최근 조 씨를 둘러싸고 검'경의 각종 비리 의혹이 나오고 있다. 대구 성서경찰서 소속 J경사는 2009년 5월 중국에서 도피 중이던 조 씨 등 일당 4명에게서 골프와 술 접대를 받고 금품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J경사는 조 씨의 수배를 직접 요청한 사건 담당자였다. 대구경찰청은 현재 조 씨 측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경찰 등을 수사하고 있다.

자신을 체포하려는 경찰까지 향응 접대로 무력화시키는 조 씨의 로비력은 간부급 검사까지 뻗어나갔다.

조 씨의 최측근 강모 씨가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의 차명계좌에 돈을 입금한 정황이 경찰에 의해서 발견된 것이다. 세간의 소문으로만 돌았던 간부급 검사 연루설이 실제로 밝혀진 것이다. 김 검사는 조 씨 측근으로부터 2억4천만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조 씨의 밀항을 도왔다', '사건을 덮기 위해 조 씨의 사망을 성급하게 발표했다', '경찰 고위간부가 연루돼 있다' 등 의심을 받았던 경찰은 반격의 기세를 잡았다.

이처럼 검'경 충돌사태를 일으킨 고검 검사 비리 의혹 사건의 발단도 조 씨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임검사가 본격적으로 수사를 시작함에 따라 조 씨 사건에 연루된 검'경 인사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조 씨의 가족들은 조 씨가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사망했다고 비디오까지 공개했지만 그 이후로도 골프장과 술집, 도박장 등을 출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희대의 사기꾼이 자신의 사망까지 사기 치고 있는 동안 검'경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비리만 양산하고 있다. 사기꾼으로부터 억울한 피해를 당한 서민이 호소할 수 있는 대표적인 기관은 경찰과 검찰이다. 피해자들은 조 씨를 잡아서 진실을 밝혀달라고 눈물로 호소했지만 검'경은 지난 4년 동안 뒷짐만 지고 있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가족과 친척의 돈, 심지어 사채까지 끌어들여 조 씨에게 갖다 바친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 주지는 못할 망정 비리를 양산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 경찰과 검찰은 지금이라도 힘을 모아 조 씨의 사망 여부와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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