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술 권하는 사회

입력 2012-11-26 14:40:45

대구 계산동에서 출생하여 일제 강점기에 소설가로 활동한 빙허(憑虛) 현진건이 1921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에 '술 권하는 사회'란 것이 있다. 일본 동경에 유학을 가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온 남편이 허구한 날 술만 퍼마시고 늦게 들어오니 아내가 볼 땐 한심하기 그지없다. 못 배운 아내가 볼 땐 대단히 많이 배운 남편에게 도대체 누가 그렇게도 술을 권하는지 물으니 남편이 이렇게 대답한다. "내게 술을 권하는 것은 홧증도 아니고 하이칼라도 아니요,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소설의 남편은 당시의 암울한 현실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무능함 때문인지, 또는 그 모두로 인해 그렇게 매일 술을 마셔댔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그 후 세계대전도 막을 내리고 우리는 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났으며 동족상잔의 비극도 한 차례 겪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그 모든 것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세계 10위권 이내의 경제대국을 이룩하였다. 그렇다면 그렇게 술을 권하던 그 사회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대학의 신입생 환영회나 동아리 행사들, 그리고 각 직장의 회식 풍경을 보면 일단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술을 권하는 방법이나 종류에 있어서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고, 술을 권하는 정도는 흡사 서바이벌 게임을 보는 듯하다.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유명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이 술 광고를 하고 있고, 술보다 더 비싼 술 깨는 음료까지 광고하고 있다.

국제주류시장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고급 위스키 소비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것도 2001년부터 11년째 부동의 세계 1위다. 인구 5천만 명인 우리나라가 지난해 고급 위스키를 69만 상자를 마셔 3억1천만 명의 미국(47만 상자), 13억4천만 명의 중국(23만 상자), 1억3천만 명의 일본(14만 상자)보다도 더 많이 마셨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국민의 건강이 위협받지 않을 수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음주와 관련한 질병으로 인해 약 143만 명이 건강보험을 통해 진료받았고, 이로 인한 진료비는 1조2천876억원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진료비뿐 아니라 술로써 비롯되는 온갖 사회경제적 비용을 추산하면 연간 21조 원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렇게 술은 정신장애도 만들고 폭행과 사고로 다른 사람의 건강과 목숨까지 빼앗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같은 기호품인 담배보다 더 관대한 취급을 받는다. 담배는 한 갑당 국민건강증진기금이 354원씩 부과되지만 술에는 한 푼도 부과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고급 위스키만이라도 건강증진기금을 부과하는 것은 어떨까? 90년 전 현진건의 단편소설은 다음과 같은 아내의 넋두리로 끝을 맺는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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