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 진영에서 차기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생각과 입장이 흘러나오고 있다. 누가 당선되건 어떤 방식으로든 정부조직에 손을 대기는 할 모양인데, 역대 정부에서 추진된 조직 개편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외환위기를 맞으며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작고 강력한 정부 구현을 목표로 세 차례에 걸쳐 조직 개편을 실시했지만 경제 부처의 잦은 통합과 분산, 국정 홍보 조직 부활 등으로 혼선을 겪었다. 참여정부 시절 부처 간 기능 조정을 통한 업무 효율화와 장기 국가 개발 과제 해결을 위해 단행한 조직 개편은 정부 산하 각종 위원회 확대로 행정 효율성 저하를 초래했다.
현 정부도 임기 초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기능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정부조직을 축소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전 정부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참여정부 말 579개에 달했던 각종 위원회를 통폐합해 431개로 줄였으나 지난 6월 현재 505개로 다시 늘었다. 18부 4처의 조직을 15부 2처로 개편한 정부 체계도 실제 국정 운영 과정에서 일부 미비점이 나타나고 있다.
정책의 상충으로 빚어지는 부처 간 의견 충돌을 효과적으로 조정하는 기능이 미흡하거나, 유관 부처 사이에 손발이 맞지 않아 차질이 빚어지는 경우가 심심치 않다. 이른바 국정 관심 분야에 지원이 집중되면서 주목받지 못하는 기능과 업무는 찬밥 신세가 되기도 한다. 부처 통폐합에 따라 과거 정보통신부 업무가 지식경제부, 문화체육관광부, 행정안전부, 방송통신위원회로 나누어지면서 정책 종합 및 조율 기능이 실종됐다. 4대강 살리기와 주택 공급 사업에 예산이 몰리는 사이 해양 분야 지원 사업은 홀대받고 있으며,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 통합 후 교육 현안에 매달리느라 장기적인 과학기술 지원 정책이 후순위로 밀려났다.
부처명과 기능 간의 일관성과 유관성이 명확하지 못해 빚어지는 혼선도 있다. 현 정부 출범 후 신설된 부처의 대다수가 주요 업무를 나열한 조합병렬형 명칭(문화체육관광부 등)을 가진 데 반해, 전반적 산업을 관장하는 부처명(지식경제부)은 다소 모호한 광의의 개념으로 명명됐다. 어느 부서에서 어떤 업무를 처리하는지 가늠하기가 힘든 경우가 생겨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각 후보 진영에서는 이러한 현 정부 조직체계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해양수산부 부활, 과학정보통신미디어부 복원, 중소기업부 신설 등을 공약하고 있다.
차기 정부의 조직 개편 과정에서는 무엇보다 미래사회의 메가트렌드 변화가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 고령화와 양극화, 경제 불확실성 증대,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기술개발 등의 측면을 감안해 미래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과거 정부조직 개편 교훈과 현재 정부조직 운영상 문제점에 더해 다가올 미래의 중장기적 사회변화 추세 분석을 감안하면 차기 정부조직 개편의 방향은 대략 몇 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국정 운영의 혼선을 막기 위해 기존 조직의 틀은 최대한 유지하면서 업무와 기능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해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 재설계를 해야 한다. 국가 미래전략을 통합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되,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가능하면 위원회는 만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 가칭 '국가미래전략부'를 신설해 기존 조직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국가 장기 계획 관련 업무를 통합하고 예산 기능을 부여해 실질적인 종합적 조정자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정치적 고려가 담긴 임의적 조직 개편은 지양해야 한다. 업무의 시작과 끝을 최대한 한 조직에서 마무리하도록 해 조직 리더의 책임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부서의 역할과 명칭을 명확히 하고 새로운 부처 설립은 가능한 한 최소화해야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정부조직을 고치고 명칭을 바꿔온 우리와 달리, 미국과 일본은 지난 수십 년간 신설부서가 두세 개에 불과할 만큼 정부조직 체계에 큰 변화가 없다.
차기 정부가 특히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중앙정부 기능의 과감한 이양이다. 역대 조직 개편 때마다 작고 강한 정부를 내세웠지만 부처나 장관 숫자를 줄이는 데 그쳤을 뿐 실제 정부 기능의 경쟁력은 기대만큼 높아지지 못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중앙정부에 너무 많은 기능과 역할이 편중돼 있기 때문이다. 중앙부처가 떠안고 있는 과중한 업무량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지방정부나 민간으로 권한과 기능을 넘겨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모쪼록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 하기보다 기존 조직의 안정성을 고려하면서 내용상의 실질적인 변화가 가능한 정부조직 개편을 기대해 본다.
이재술/딜로이트안진 총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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