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일상, 힐링에 목마른 세상…스님들, 서점가 '설법삼매'

입력 2012-11-24 08:00:00

불교적 치유 서적 출판시장 돌풍

불안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학업 스트레스에 힘들어하는 학생들, 취업난에 고민하는 청년들, 바쁜 업무에 지친 직장인들, 언제 직장을 잃을지 몰라 불안해 하는 중년들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들의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저 불안에 떨며 일자리, 소득, 집, 연애(결혼), 아이, 희망 등을 하나하나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심신의 치유가 절실한 시대다. 다행히 치유과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법을 알려주며 괜찮다고 다독여 주는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자가치유(셀프힐링)를 주제로 한 인기 서적의 저자들 중에는 스님들이 많다.

◆지금은 스님시대

스님들이 쓴 치유 관련 책들이 출판시장을 휩쓸고 있다. 지난 1월부터 베스트셀러 1위를 독주하고 있는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130만 부를 돌파한데 이어 200만 부 돌파를 향해 순항 중이다. 휴식, 관계, 사랑, 미래, 인생, 사랑, 수행, 열정, 종교 등을 주제로 지혜롭게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이 책은 올해 선물용으로도 가장 많이 판매된 책이 됐다. '힘들면 한숨 쉬었다 가요. 사람들에게 치여 상처받고 눈물 날 때, 그토록 원했던 일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사랑하던 이가 떠나갈 때, 우리 그냥 쉬었다 가요'라는 혜민 스님의 위로에 독자들은 마음을 열어젖혔다.

'스님의 주례사', '방황해도 괜찮아' 등 법륜 스님의 책들도 100만 부 가까이 팔려나갔다. TV 프로그램 '힐링캠프' 출연 후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고 있다. 이 밖에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의 정목 스님이나 '영원에서 영원으로'의 불필 스님도 베스트셀러 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일부 서점에서는 힐링 도서 전용 코너까지 마련하고 있다. 심지어 혜민 스님을 모방한 가짜 스님인 '효봉 스님'이 페이스북에서 선풍을 일으키는 일도 벌어졌다.

온라인에서도 열풍은 이어진다. 기자가 직접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힐링 또는 치유라는 주제어를 검색해보니 약 1천여 종의 책이 나타난다. 이 중 스님들의 저서가 상당수다. 서점 관계자들은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마음을 편하게 하는 내용이라 주목받는다고 생각한다. 불안한 사회 속에서 위로받고 싶은 바람이 관련 책들의 폭발적인 판매로 이어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외국 스님들도 가세

치유를 주제로 한 저술에 외국 스님들도 가세하고 있다. 이미 자국에서 발간된 책들이 한국 출판계의 힐링 열풍에 발맞춰 한국어판으로 국내에 진출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의 '생각 버리기 연습'이 인기를 끌면서 각종 베스트셀러 집계에 이름을 올려 놓고 있다. 이달 들어서는 일본 겐코지 주지 스님인 마스노 순묘의 '스님의 청소법'이 첫선을 보였고 스리랑카 불교 장로인 알루보물레 스마나사라의 '화를 다스리면 인생이 변한다' 등 외국 스님들의 책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한국 스님들의 책들이 주로 무한 경쟁 속에서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에세이 형식을 띤다면, 외국 스님들의 책은 불교사상이나 각국의 전통문화를 함께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스님의 청소법'은 일본의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한 선사상을 소개하고 있고 '화를 다스리면 인생이 변한다'는 불교와 명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외국 스님들의 책들은 내용 면에서는 10여 년 전 일시적으로 불었던 스님열풍을 닮았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직후인 1998년이었다. 당시 법정 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가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해 법정 스님의 '무소유', 원성 스님의 '풍경', 현각 스님의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등이 불안에 떨던 대중의 마음을 위로했다.

영풍문고 대구점 김근희 과장은 "10여 년 전에는 철학이나 불교적인 내용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자전적인 에세이 형식의 부드러운 글들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에 나온 책들은 평범한 언어로 일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펼쳐놓으면서 불안한 대중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고 했다. 소소한 것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얻을 수 있다는 속삭임이 출판계 스님 열풍의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곱지만은 않은 시선

최근에 일고 있는 출판계 스님 열풍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다양한 책들이 나와야 함에도 지나치게 한 가지 주제에 편중된다는 지적이다. 혜민 스님의 책이 성공한 이후 아류작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다양성이 파괴되면서 출판계에나 독자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나친 상업주의가 관련 아류작들을 쏟아내게 한다는 우려도 있다.

일부 서적들은 힐링을 표방하고 있지만 내용이 부실하다. 자기계발서의 연장으로 주관적인 경험과 주장에 불과하며, 객관적인 내용과 입증할 만한 이론이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종교인들의 책은 지나치게 감성에 의존하고 있어 그 후유증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실제 최근 트위터에서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스님의 어설픈 육아 조언이 물의를 일으키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적절한 치유를 원한다면 문제의 회피와 일시적 충족감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을 시도하라고 권한다. 치유가 필요한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진단하고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최창동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우울증 등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 때는 병원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도 중요하고 책을 통해 안정감과 행복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 효능은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면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글'사진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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