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철의 '별의 별' 이야기] 이진

입력 2012-11-22 14:19:57

SBS TV 수목극 '대풍수' 카리스마 왕족 열연 걸그룹 출신 배우

S# '핑클' 옷 벗고 본격 배우로…망가지는 역할이 더 끌려

연기력을 인정받고 진정한 배우가 되기까지 오랜 세월을 기다렸다. 배우 이진은 이제서야 완전한 연기자로 성장했다. 인고의 세월을 견딘 그는 유하면서도 단단해 보였다.

SBS TV 수목극 '대풍수'에서 어린 영지 역을 맡아 지조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왕족을 연기해 호평을 받은 그는 자기만의 독특한 향기와 매력을 뿜어댔다. 1998년 '블루 레인'을 내놓은 원조 걸그룹 핑클 출신이라는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1980년생, 한국 나이로 서른세 살. 이진은 가수 활동 때와는 다르게 연기 활동에서는 한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드라마 '영광의 재인'에서 눈길을 끌긴 했지만, '대풍수' 초반을 이끄는 중요한 영지를 해낼 수 있을까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칭찬에 인색한 아버지도 그에게 "너무 잘 봤다"고 했고, 시청자도 "이진의 재발견"이라며 호평 일색이었다.

#올해 서른 셋…예쁜 척하기 어려워

"'대풍수' 대본을 봤을 때는 부담스러웠죠. 말도 못 타는데 타야 했고, 수중신도 있었는데 제가 수영을 못 하거든요. 그런데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제작비가 200억원이나 든다고 하니 걱정도 많이 했지만 '언제 또 이런 캐릭터를 만나보겠어?'라는 생각으로 참여했죠. PD님도 믿음을 주셔서 자연스럽게 의지하고 따라갔어요."(웃음)

앞서 이진은 2002년 시트콤 '논스톱'에서 연기를 선보이긴 했지만 핑클의 인기를 등에 업고 출연한 힘이 더 클 것이다. 그가 제대로 된 연기를 한 건 2006년 베스트극장 '사고다발지역'이 처음. 이후 2007년 '왕과 나' 오디션을 통해 당당히 배역을 따냈다. 연출자가 세 번 교체된 드라마였던 터라 자신의 위치가 불안했다는 그지만 역할을 충실히 해냈고, 그때의 자신감은 '대풍수'에서도 자연스럽게 배어났다. 솔직히 이진을 처음 만나면 연기자로 전업한 뒤 답답해하고 고통스러워할 줄 알았다. 그를 찾는 곳이 많지 않고, 몇몇 작품에 출연했어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같은 그룹 출신 성유리가 주인공을 맡아 승승장구하는 것과 대조됐다. 하지만 그의 답은 '쿨'하다. 기다림을 즐겼노라고. 몇 차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이진은 아무렇지 않아 했다.

"대중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연기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연기자가 꿈이었는데 그 일을 즐기면서 하고 싶었을 뿐이죠. 물론 대중에게 사랑을 받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건 제게 큰 영향을 주진 않아요. 내 연기를 알아봐 주지 않거나 날 찾는 곳이 많지 않다고 서운함을 느낀 적도 없었죠."(웃음)

# 핑클로 뜬 덕에 연기자의 길 걸어

이진은 "많은 분들이 물어보시는데 솔직히 (성)유리를 시기하거나 질투를 하진 않았다"며 "유리처럼 주인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다만 자연스럽게 오래 연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언젠가는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겠지'라는 생각만 했다"며 "어렸을 때 너무 많은 스케줄이 있었던 활동을 해서인지 일이 없던 때가 오히려 여유롭게 내 시간을 갖고 편하게 재충전할 수 있었다"고 만족해 했다.

'대풍수' 전작인 '영광의 재인'에서 자신의 연기를 보고 함께 하고파 했다는 이용석 PD에게 특히 고마워했다. 또 상대역으로 호흡을 맞춰준 조민기·오현경·지진희 등 선배들과의 연기를 통해서 안정감을 찾았다고 좋아했다. 극 중 마음과 몸을 맡긴 인물로 나온 최재웅과의 호흡은 이진의 연기를 돋보이게 했다. 이진은 "연기 잘하는 이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배시시 웃는다.

이진은 시종 연기에 도전하며 고민과 걱정이 없었다고 했지만 "솔직히 이번 역할이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이기 때문에 잘 소화하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 연기자로 자리매김해 보자는 생각은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또 "내가 나오는 출연 분량이 끝나기 전까지 시청률 두 자릿수를 넘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는데 지난 1일 방송에서 10%를 넘겨 너무 좋다"고 소녀처럼 웃었다.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하고 싶어 했다는 이진은 연기자 데뷔가 '핑클' 활동 때문에 늦어진 거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이진은 "'핑클' 시절은 좋은 추억인 것 같다.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도 핑클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며 "핑클을 해서 그나마 연기자의 길이 빨리 열린 게 아닌가 한다"고 했다. 이어 "가요 프로그램 무대에 섰을 때가 정말 오래전인 것 같다. 이제는 귀엽고 예쁜 척하는 걸 못하겠다"며 "오히려 망가지는 역할이 조금 더 편할 것 같다"고 웃었다.

"제 안에 망가지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긴 해요. 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은데 안 들어오네요.(웃음) 연기는 하면 할수록 재밌는 것 같아요. 다양한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거잖아요. 오래 연기하고 싶은 욕심이 들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서른이라는 나이가 바로 앞에 다가왔을 때 죽기보다 싫었다는데, 막상 서른 살을 넘기니 이제 여유로워졌다. 연기력을 인정받은 이진은 또 다른 연기 도전을 시작한다.

"시청자들이 이번에 자신감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죠. 폭넓게 용기있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어떤 역을 맡으면 어떻게 보일까 하고 눈치 아닌 눈치를 봤을 텐데 지금은 조금 자신감이 붙었어요."

연기를 향해 전진 중인 이진은 "'왕과 나'에서 호흡을 맞췄던 전인화 선배를 가장 닮고 싶다"며 "연예 활동도 충실히 하시고, 가정 생활도 너무 예쁘게 잘하고 계시다. 카리스마도 있으신데 너무 닮고 싶고 배우고 싶은 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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