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월성원전 건설 탓" 한수원 "자연 현상일 뿐"

입력 2012-11-21 11:35:19

몸살 앓는 경주 대왕암 해변 진실 공방

경주시 대왕암(문무대왕릉) 해변은 5, 6m 폭의 자갈밭으로 바뀐지 오래다. 주민들은
경주시 대왕암(문무대왕릉) 해변은 5, 6m 폭의 자갈밭으로 바뀐지 오래다. 주민들은 "과거에는 10m 폭에 가까운 모래 해변과 새하얀 백사장으로 유명했던 곳"이라고 했다. 신동우기자 sdw@msnet.co.kr

"그렇게 아름다웠던 해변이 없어지고 있어요. 고향과 함께 삶의 터전이 사라지는 심정입니다."

최황윤(37) 씨는 '어린 시절 여름만 되면 몰려드는 사람들로 늘 북적이던 곳'이라며 고향을 회상했다. 그는 현재 대왕암 해변으로 이름이 바뀐 봉길해수욕장(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에서 태어나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다. 지금도 대앙왐 바로 앞에서 횟집과 특산품 매장 등을 운영하며 고향을 지키고 있다.

"어렸을 적엔 손만 닿으면 쑥 들어가는 새하얀 백사장이 문무대왕릉 앞까지 넓게 퍼져 있었습니다. 그때는 관광객이 너무 많아 시내버스가 항상 만원으로 도착하고는 했죠"

최 씨가 추억 속 해변의 변화를 알아챈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다고 한다. 고운 모래가 사라진 자리를 딱딱한 자갈이 메우기 시작했고 길이마저 줄어들어 집 앞 도로까지 물이 들어찼다고 했다.

최 씨는 "주변 어르신들 말씀에 '원전이 들어서고 물빛이 변했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이제 30여 년을 산 내 눈에도 그게 보일 정도"라며 "하루에도 수만 명이 찾을 정도로 경주에서 가장 유명하던 해수욕장이었지만 이제는 무속인들이나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나 볼 수 있을만큼 쓸쓸한 곳으로 변해 버렸다"고 한숨을 쉬었다.

◇전설이 숨 쉬는 대왕암 해변

과거에는 마을 이름을 따 봉길해수욕장이라 불렸지만 지난해부터 경주시에 의해 대왕암 해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왕암이란 국내 유일의 수중왕릉으로 유명한 문무대왕릉(사적 제158호)의 별칭이다. 문무대왕릉은 이곳 해변에서 약 200m 떨어진 해상에 위치하고 있다. 용으로 변한 문무대왕과 신라를 지킨 피리 '만파식적'의 전설이 숨쉬는 곳인만큼 매년 많은 수학여행단과 관광객이 찾는 명소이다. 아울러 감은사지와도 가까워 문화 역사 탐방과 바다 나들이를 겸한 관광지이며, 1780년대까지 경주에서 가장 큰 해수욕장으로 유명했다.

◇주민 '원전 건립 탓' vs 원전 '자연적 현상일 뿐'

그러나 현재 대왕암 해변은 아름다운 옛모습을 잃어버린채 방치돼 있다. 정확한 자료는 남아있지 않지만 경주시에 따르면 과거 1980년대까지 하루 수만 명에 이르던 여름철 관광객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크게 줄어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주민들은 주변 월성원전 건립 이후 해변의 길이가 줄어들고 모래사장이 자갈밭으로 변하는 등 경관이 나빠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주민들은 2003년 2월부터 2004년 9월까지 의뢰한 용역조사 결과에 따라 원전이 건립되면서 해변에 쌓여야 할 모래가 원전 방파제 인근으로 퇴적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또 해변과 연결된 대종천(강)의 물을 원전 측이 사용하면서 과거만큼의 하천 퇴적물이 유입되지 않아 해변의 유실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남용(53) 봉길리 어촌계장은 "관광객이 없어지니 제를 올리는 무속인들만 점점 늘어나고 또 이들 때문에 관광객이 줄어드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며 "원전 건립 이후 해변 상황이 변한 것은 주민들 누구나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응당 원전에서 책임을 지고 원상복구를 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원전 측은 2007년 1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새로운 용역조사를 의뢰해 주민들의 주장과 반대의 결과를 내놓았다. 이 조사에서는 문무대왕릉 주변 해변의 침식 규모가 계절별 침퇴적 범위 내에 들어가는 정도로써 매우 안정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월성원전 이규찬 홍보팀장은 "대왕암 주변은 계절적인 변동 범위 내에서 안정적인 침퇴적 특성을 가지는 해안으로 사료된다"며 "현 상태의 백사장을 유지하는데 인위적인 대책 방안은 불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즉 자연복원력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대책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문화재보호구역이 걸림돌

전문가들은 책임 소재에 앞서 해변의 침식 원인을 좀 더 분명하게 분석하고 이에 따른 고민을 정부와 경주시, 주민, 월성원전이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해변의 침식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책 마련 수립은 불가능하며, 더욱이 문무대왕릉 주변 500m는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는 까닭에 어느 한 기관의 힘만으로는 바로 잡기 힘들다는 것이다.

부경대학교 수산과학연구소 이종섭(토목공학과 교수) 연구책임자는 "학계에서는 문무대왕릉 주변의 해변은 줄어든 반면 월성원전이 있는 읍천리 주변은 해안선이 바다쪽으로 평균 23m 전진돼 1979년 원전 건립 이후 약 3만200㎥의 퇴적물이 쌓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월성원전 구조물에 의한 해변 침식의 기여율은 약 31%로 계산됐다"며 "이는 해안가 전반적으로 어떠한 침'퇴적 현상의 변화가 발생했다는 의미다. 이를 명확히 규정해 내야만 근본적인 대책 수립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바다 속에 퇴적을 돕는 구조물을 설치하거나 주변 해안시설의 변화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문화재보호구역은 모든 시설물의 설치 자체를 금지하고 있어 정부와 경주시 등 유관기관들의 전폭적인 협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주'이채수기자 cslee@msnet.co.kr 포항'신동우기자 sdw@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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