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빈곤이 두려워"
흔히 '58 개띠'로 대표되는 베이비부머. 한국전쟁 후 출산 붐이 일어난 1955년부터 산아제한 정책이 도입되기 전인 1963년까지 태어난 이들을 말한다. 820여만 명 가운데 730여만 명 정도 생존해 있다. 베이비부머는 산업역군으로 또 중년에 IMF 외환위기를 맞아 삶의 기반이 한 번에 무너지는 쓰라린 경험의 소유자들이다.
부모와 자식들을 부양하며 힘겹게 살아온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시작됐다. 생산가능인구의 17.8%를 차지하는 거대 집단인 만큼 이들의 은퇴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고 사회 불안요소로 번질 수 있다. 실제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자영업 시장에서 불안 요인이 감지되고 있다. 마땅한 노후 대책을 세우지 못한 이들이 너도나도 창업전선에 뛰어들면서 자영업 시장이 포화 상태를 맞고 있다. 베이비부머의 은퇴 시기를 맞아 그들의 현주소와 사회 연착륙의 길을 4회에 걸쳐 짚어본다.
◆소리 없이 우는 남자들
중소기업에 다니다 퇴직한 후 부동산중개소를 차린 서모(52) 씨.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월 100만원도 벌지 못하는 달이 많아졌다. 서 씨는 "부동산 중개 수입으로는 생활비 충당이 안 돼 아내가 마트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한숨지었다.
은행 지점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모(54) 씨. 두 달 후면 30여 년 근무한 직장을 떠나야 하는 그의 가장 큰 고민은 자식 교육이다.
김 씨는 "다행히 큰딸은 졸업을 했지만 아들은 현재 군복무 중이다. 올해 말 제대를 하면 내년 2학년에 복학한다. 생활비는 예금과 퇴직금으로 충당할 수 있지만 1년에 2천만원 정도 소요되는 학비는 감당하기가 벅차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전문인력 종합고용지원센터가 지난해 전국 베이비부머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베이비부머의 가장 큰 고민은 생계비와 자녀 교육비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64.3%가 최대 고민으로 '생계비'자녀교육비 등 경제적 문제'를 꼽았다. 이어 '본인 건강'(13.9%), '정신적 스트레스'(10.0%), '갑작스러운 공백시간 활용 문제'(7.4%)가 뒤를 이었다.
부동산담보대출도 베이비부머들이 안고 있는 걱정거리 중 하나다. 대기업에 다니는 손모(49) 씨는 2007년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있는 151㎡(46평) 아파트를 구입했다. 아파트 가격이 오를 것으로 판단해 2억원의 빚을 내 아파트를 산 것.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 붙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손 씨는 "남들은 좋은 아파트에 산다고 부러워하지만 사실은 하우스푸어다. 월급 받아도 대출금 상환에 200만원을 쓰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집을 팔려고 내 놓아도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건강'가족문제도 또 다른 고민
은행에 다니다 올 초 퇴직을 한 박모(55) 씨는 매일 아침 출근을 하 듯 집을 나선다. 마땅히 갈 곳은 없지만 집에 있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는 "6개월 정도 지난 후 가족회의가 열렸다. 아내와 자식들로부터 집에만 있으니 보기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족에 대한 서운함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당혹감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공기업에 근무하는 전모(54) 씨는 최근 고등학교 동기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전 씨는 "친하게 지내는 친구의 절반 정도가 올해 퇴직했다. 내년이면 70% 정도가 퇴직한다. 퇴직 후 받는 스트레스에다 집에서 주는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우울증 증상을 보이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메트라이프생명이 내놓은 '베이비부머 연구' 자료에 따르면 베이비부머의 40% 정도가 건강 문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26.2%는 신체 건강, 6.2%는 우울증 등 정신 건강 이상을 호소했으며 신체'정신 질환이 함께 있는 고위험집단도 7.2%에 달했다. 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해 발표한 '우울증 환자 현황'에 따르면 50대 남성 우울증 환자는 2007년 2만7천여 명에서 2011년에는 3만2천여 명으로 급증했다.
◆은퇴 준비도 요원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모(53) 씨는 퇴직이 2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은퇴 준비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 자신의 월급으로는 대학에 다니는 두 아들 학비조차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씨는 "자식들 졸업이라도 시켜 놓고 퇴직을 하면 한시름 덜 수 있지만 현실은 여의치 않다. 게다가 요즘에는 졸업도 늦고 졸업 후에도 취직이 잘 안 돼 당분간 부모가 뒷바라지를 해줘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노후 준비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전문인력 종합고용지원센터에 따르면 베이비부머의 56.3%가 퇴직 후 노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 후 노후 준비가 된 경우는 13.9%에 그쳤다.
올 초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베이비부머 가구의 은퇴 후 자산 여력을 분석한 결과, 보유 자산으로 은퇴 후 최소 생활비를 100% 이상 충당할 수 있는 가구는 24.3%, 적정 생활비를 100% 이상 충당할 수 있는 가구는 12.7%에 불과했다.
또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국민연금연구원 보험연구원 등이 함께 조사한 '베이비부머 실태조사 및 정책현황 분석' 자료에 따르면 배우자를 포함해 공적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베이비부머 비율이 13.7%로 나타났다. 특히 퇴직연금 미가입률은 72.1%였으며 수령할 퇴직금이 없는 경우도 63.8%에 달했다. 이는 베이비부머가 부모와 자식을 부양하며 세대 간 버팀목 역할을 했지만 정작 본인을 위한 노후 준비는 소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원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중고령자는 한 번 실직하면 재취업이 어렵기 때문에 이들의 실직은 가계소득 감소와 소비 침체로 이어져 사회 불안을 심화시킬 수 있다. 특히 실업 기간이 길어져 이들 중 일부가 빈곤계층으로 전락하면 복지재정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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