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율리아나' '디모테오' '그냥 철수'

입력 2012-11-19 11:18:00

25년 전 대통령선거가 한창일 때 김영삼(YS 후보)는 이렇게 말했었다. '내가 집권하면 청와대에서 목탁소리 대신 찬송가 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하겠다.' 기독교 장로였던 그로서는 친기독교적 발언으로 기독교 신자들의 표를 모아보겠다는 속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속셈이 없고선 민감한 선거판에 목탁이니 찬송가 같은 편향적 발언을 했을 리가 없다. 그러나 결과는 노태우 후보에게 패배했다.

'찬송가 발언'으로 쓴맛을 본 YS는 다음 대선에서 DJ(김대중)와 붙었을 때 선거대책 캠프에 불교신자 국회의원을 대거 투입하고 부인은 전국 사찰을 돌며 스님과 불자들을 만나 한 표를 호소했다. 그리고 DJ를 누르고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러자 그다음 대선에서는 DJ도 '새정치국민회의' 당원들 중 불교신자만 모아 '새 연등회'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해인사 방장 큰스님을 만나러 갔을 때는(1996년 7월) 당 기관지(機關紙)에 스님의 법문 전문(全文)을 게재하고 전국 사찰과 불교계에 3만 부나 배포했다. 시골 산속 사찰의 탑(塔) 낙성식에도 직접 참석했다. 그런 뒤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권을 쥐었다.

그렇다면 종교는 대선에서 유효(有效) 득표 효과에 영향을 끼치는 것인가, 아니면 종교는 그냥 종교일 뿐일까. 투표와 종교의 상관관계는 여러 조사에서 '거의 영향 없음'으로 나오고 있다. 기독교 목사들을 주요 독자층으로 하는 모 월간 잡지가 신학생 733명과 평신도 840명을 대상으로 했던 두 조사를 보자. 응답자의 38.3%가 후보 지지의 기준으로 '국가 경영 능력'을 꼽았고 그 다음 도덕성(14.4%)과 민주화 기여도(12.8%) 등을 꼽았다. '후보가 기독교인'이어서 뽑겠다는 응답은 7~9%밖에 되지 않았다. 76.8%는 '비도덕적 기독교인'보다 '도덕적인 비기독교인'을 찍겠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대통령 후보들이 유권자의 종파(宗派) 눈치를 살피고 종교계를 기웃거리는 구태는 '찬송가' 발언 25년이 지난 오늘날 대선 판에도 여전하다.

유권자 대부분이 종교를 갖고 있는 마당에 후보가 종교계에 신경 쓰는 것을 기웃거린다, 눈치 본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걸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통치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칠 후보의 종교관이나 신앙적 양심은 제쳐진 채 성당과 교회, 사찰을 건성으로 누비기만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도 살펴봐야 한다.

세례명이 '율리아나'인 박근혜 후보부터 보자. 성녀(聖女) 율리아나는 어머니를 여읜 뒤 20년 후 여수도원장이 돼 수요일과 금요일은 음식을 먹지 않고 기도만 하는 엄격한 자기 절제를 지켰다. 평생 자선과 병자 위문 등 약한 자를 보살피는 삶도 살았다. 박 후보는 그런 율리아나의 삶과 얼마만큼 가까이 다가가 있을까. 레지오 등 교회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있는 박 율리아나. 자기 절제는 어느 정도 다가가 있다 치더라도 가난한 병자, 그늘 속의 약자들의 삶에는 가까이 섞여 살아보지 못한 '공주' 이미지의 성장 이력은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그녀의 신앙적 숙제이고 야당의 공격점도 그 점이다.

다음 문재인 후보, 역시 가톨릭 신자인 그의 세례명은 '디모테오'다. 디모테오는 성 바오로가 가장 아꼈던 성인이다. 정직하며, 죽을 때까지 정신적 주군인 바오로를 따르고 순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낌을 받았던 그도 주군 정신을 좇아 순교하듯 정치를 하고 있는가. 오히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그늘에 묻히기를 거부했다. 부분적 은사(恩師) 부정인 셈이다. 친노 측근들을 반대쪽 공세에 밀려 내치기까지 했다. 정직? 노 정권 시절 신용불량자 사건수임 특혜의혹 공방(攻防)에도 휩싸여 있다. 앞으로 은사의 정치노선 중 실패한 건 정직하게 인정하는 자세와 깨끗함의 증명 없이 교회와 절만 찾아서는 진정한 디모테오가 될 수 없다.

안철수 후보, 그는 무종교다. 법명이나 세례명 없는 '그냥 철수'다. 그 역시 '어머니 종교가 불교다…'며 절을 찾아다닌다.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종교가 무엇이냐보다 그들의 종교적 철학과 양심, 그리고 세례명이 지니는 상징성을 얼마만큼 현실정치 속에 실현시킬 것이냐에 더 주목한다. 따라서 후보들은 신앙적 양심과 철학을 지킨 통치자는 영광을 남기고, 신앙을 권력에 이용하며 우군(愚君)'폭군(暴君)의 길을 간 자는 오욕을 남겼던 역사의 교훈부터 되새겨야 한다. 아무리 사랑과 자비, 용서에 끝이 없는 하느님과 부처님이라도 권력 잡으려고 종교를 허투루 갖고 놀면 돌아앉으신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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