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양말 벗고 체면차리다… 섬김 받는 시대로

입력 2012-11-17 07:22:41

발에는 신체의 오장육부와 연결된 반사구가 몰려 있어 발 전체를 자극하면 몸 전체를 마사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발에는 신체의 오장육부와 연결된 반사구가 몰려 있어 발 전체를 자극하면 몸 전체를 마사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발'에도 감정이 있다? 1991년 12월 한국신발피혁연구소는 재미난 관찰 결과를 발표했다. 빛을 반사시켜 물체의 변화를 감지하는 '피도스코프'라는 장치로 상황에 따른 발의 변화를 관찰해 분석한 것. 화를 낼 경우 발가락이 빳빳하게 굳어졌다. 불안한 경우 발바닥이 마치 얼굴 피부처럼 가늘게 떨렸다. 연구소 관계자는 "발은 건강이나 감정 상태를 나타내는 '제2의 얼굴'이다"고 밝혔다.

◆발이 주인공인 '세족식' 유행

그렇다고 상대방의 발을 보고 건강이나 감정 상태를 살피는 경우는 없다. 잘 알려지지 않은 지식인 데다 발은 늘 신발이나 양말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때만큼은 '제2의 얼굴'이라 하는 발을 드러내고 서로 깊숙이 '교감'한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세족식'에서다.

세족식은 원래 가톨릭교회에서 수난주간의 목요일에 행하는 의식이다. '최후의 만찬' 직전에 그리스도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준 데서 유래했다. 제자들을 '섬기는' 표현이었다. 오늘날에도 교황이 평신도들의 발을 씻겨주는 의식을 갖는다.

이러한 '섬김'의 의미를 되새긴다며 가톨릭교회가 아닌 일부 사회단체나 기업에서 세족식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그랬던 것이 2000년대 초반부터는 사회 다양한 곳에서 세족식 붐이 일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곳이 학교다. 그리스도와 제자의 관계가 그랬듯 사제지간에는 어떤 긴장과 거리감이 늘 있기 마련. 따라서 눈 녹 듯 긴장을 풀고 서로 한걸음씩 다가서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원래는 제자가 스승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통념을 뒤집으며 감동을 유발할 수 있단다. 졸업식에서는 학생들이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세족식을 하는 것이 유행이다. 심지어 올해 초 대구 북구의 한 유치원에서도 졸업생 50여 명이 고사리 손으로 엄마, 아빠의 발을 씻겨주기도 했다.

기업 등 조직에서 위계질서를 뒤집어 치르는 세족식도 감동 극대화의 효과를 만들어낸다. 특히 경영자 등 조직의 최상급자가 시무식 등에서 신입 사원들의 발을 씻겨주는 행사가 유행이다. 최근 대선 후보들도 선거운동 과정에서 종종 시민들의 발을 씻겨주고 있을 정도.

지난 여름 자녀와 부모 동반 캠프에 참가해 일정 마지막 날 세족식을 경험했다는 주부 박지은(36'대구 북구 침산동) 씨는 "손과 손을 맞대거나 포옹을 하는 것과 또 다른 특별한 스킨십이었다.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이 발가락 사이사이를 정성껏 어루만지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다"고 말했다.

◆발 마사지부터 패티큐어까지

2천500년 전 중국 한나라 때 의학서 '황제내경'에는 '발에 인체의 모든 장부(오장육부)가 축소돼 있다'고 기록돼 있다. 발을 자극하면 장부의 기능 및 기혈을 조절해 체내 정기를 증강시키고 면역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 이는 오늘날 발 반사요법으로 이어졌고, 발 마사지라는 명칭으로 대중화됐다.

이달 14일 찾은 대구 중구 동성로의 마사지숍 '풋샵티엔느'. 이곳은 다양한 마사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메인으로 내세우는 것이 발 마사지다. 마사지 업계에서 발의 각질을 제거해주는 '닥터피시'도 이젠 일반화 됐고, 발 이외의 마사지도 시작은 일단 '족욕'으로 할 정도다. 이곳 관계자는 "신경이 집결된 '반사구'는 몸 전체에 걸쳐 분포하는데 특히 발에 가장 많이 몰려 있다. 발을 자극하는 것은 오장육부의 모든 기관을 만지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발은 심장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데 발끝까지 내려온 혈액이 되돌아가려면 심장의 힘만으로는 어려워 발 마사지로 '제2의 심장'의 역할을 살려 혈액 순환을 돕는다는 설명도 있다.

발 건강에 대한 관심은 관련 용품의 판매 증가로 이어진다. 발 안마기가 대표적. 고가의 안마의자보다 저렴해 지난 추석 전후로 인터넷 한 쇼핑몰에서는 발 건강관리 용품 판매가 지난해 대비 87% 늘었다. 이외에도 일명 '컴포트슈즈'라 불리는 발 건강 신발이나 발가락 베개 등 다양한 발 관련 용품은 이제 이색 제품이 아닌 일상 제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요즘 현대인들은 신체적 건강을 충족함과 동시에 미용도 넘본다. 발의 경우 케어부터 뷰티까지 포괄하는 '패티큐어'가 대표적이다. 패티큐어란, 라틴어로 발을 뜻하는 '패티'와 손질을 의미하는 '큐어'의 합성어다.

12일 찾은 동성로 야시골목. 이곳에는 30여 곳 네일숍이 모여 있다. 이곳만 따로 '네일 골목'으로 부르기도 한다. 거의 모든 업소가 손톱을 관리해주는 '매니큐어'와 함께 패티큐어 및 발 관리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었다. 서비스 가격은 보통 패티큐어가 매니큐어보다 더 비싸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네일 시장 규모는 8천억 원대로 급성장했다. 매니큐어는 물론 패티큐어의 인기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한 네일숍에는 '맨발 미인이 되자'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있었다. 실제로 여성들의 신발이 점점 발을 노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한 네일숍 관계자는 "최근 여름은 물론 봄, 가을에도 '토슈'나 '글래디에이터 샌들' 등 발가락을 드러내는 여성용 신발이 매년 유행하면서 사계절 내내 발톱을 관리하는 손님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발목에 차는 장신구인 발찌나 발가락에 끼우는 발가락지(토링) 등으로 발을 더욱 화려하게 꾸미는 여성들도 늘고 있단다.

◆발로 조작하는 아이디어 제품

'바쁘거나 혹은 귀찮거나'의 상태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두 손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다. 발의 감각을 살려 손 대신 써야 하는(혹은 쓰고 싶어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를 충족하기 위해 '발로 조작하는' 아이디어 제품도 여럿 출시되고 있다. 발로 페달을 눌러 뚜껑을 여닫는 휴지통은 이제 고전이 됐다.

홍준표(29'대구 수성구) 씨는 "발로 작동시키는 가전제품이 굉장히 많다"며 웃었다. 예를 들면 컴퓨터를 켜는 경우 멀티탭 콘센트의 스위치를 켜는 것부터,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의 전원 버튼은 물론 부팅 초기화면의 간단한 암호를 키보드로 입력하는 것까지, 모두 발가락으로 한단다.

이런 얘기를 들었는지 발로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스위치 버튼을 크게 디자인한 선풍기, 청소기 등 다양한 가전제품이 출시돼 있다.

일명 '발 키보드'로 불리는 제품도 있다. 손으로 입력하는 키보드의 일부 기능을 발로 조작할 수 있도록 했다. 두 손으로 마우스와 키보드를 사용하느라 바쁜 '게임광'들이 상대방보다 더욱 능수능란한 조작을 구사하기 위해 많이 구입하고 있단다.

양손 가득 장바구니를 든 주부들을 위해 한 외국 자동차 브랜드는 뒷 범퍼 아래 부분을 발로 가볍게 차면 트렁크가 자동으로 열리는 기술을 차량에 탑재하기도 했다.

발만 쓸 수 있는 장애인들을 위해 차량을 개조해 족동식 페달을 설치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왼발로 페달을 앞으로 굴리면 핸들이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뒤로 굴리면 왼쪽으로 움직이는 방식에 오른발로는 기어, 브레이크, 가속 페달까지 조작하고, 오른쪽 무릎으로 방향 지시등 조작을 하는 등 모든 차량 조작 기능이 발로 가능하도록 개조하는 것이다. 1998년 양팔 장애인의 운전면허 취득조건을 완화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족동차도 나타났다. 업계에 따르면 개조 비용은 1천만원 정도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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