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 담양 병풍산·삼인산

입력 2012-11-15 14:02:43

이성계 '임금 등극' 계시받은 기도처 전설

# 광활한 담양벌·무등산 한눈 드는 조망 압권

88올림픽 고속도로를 따라 지리산 자락을 넘어서면 주변의 산들이 파노라마를 그리며 춤추기 시작한다. 암팡진 산세를 자랑하는 바위산들이 일렁이며 춤추는 모습은 장관이다. 지리산 자락의 고남산을 필두로 남원의 문덕봉과 고리봉, 순창의 아미산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는 강천산과 추월산, 담양의 병풍산과 불태봉이 차례로 도열한다. 그중에서도 지명도는 낮으나 천연의 자연성벽이란 어떤 것인지 그 의문을 풀어주는 옹골찬 산이 하나 있다.

주능선에 오르면 주변 모두가 자연 그대로의 전망대요, 조망대다.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는 능선 너머로 아련한 전설 어린 봉우리와 지명이 자리하고 가슴이 확 트이는 희열마저 맛보게 되는 산이다. 바로 담양의 병풍산(屛風山'826m)이다.

등산의 시작점은 두 군데, 장성과 담양의 경계인 대치고개와 수북면 대방리의 대방저수지다. 그중 대부분은 대방제에서 원점회귀 산행을 선호한다.

담양IC를 빠져나와 광주로 가는 24번 국도에서 수북면으로 접어들면 오른쪽에 시선을 끄는 뾰족한 산 하나가 우뚝해 이정표 구실을 한다. 바로 병풍산과 등산을 연계할 수 있는 삼인산(三人山·570m)이다.

담양 대전면과 수북면의 경계에 있는 삼인산은 산 북쪽에 삼인동(三人洞)이라는 마을이 있어 그렇게 불리지만, 일명 몽선암(夢仙庵)이라고도 불린다. 1천200여 년 전 '견훤의 난' 때 피란 온 여인들이 끝내는 몽선암에서 병졸들에게 붙잡히게 되자, 절벽 아래로 떨어져 병졸들의 만행을 죽음으로써 항쟁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후 조선의 이성계가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자신의 임금 등극을 위해 전국의 명산을 찾아 기도하던 중, 꿈에 삼인산을 찾으라는 성몽 끝에 담양의 삼인산을 찾아 제를 올리고 기도하여 등극했다고 하여 몽성산(夢聖山)이라 불렀다.

그러나 애초에 삼인산의 명칭은 산의 형태가 사람 인(人)자 세 개를 겹쳐 놓은 형국이라 하여 삼인산(三人山)이라 했다. 산 이름의 유래를 생각하다 보니 의문 하나가 들었다. 삼인산의 모양을 보고 흔히 날카롭다는 의미의 첨산으로 볼 것인지, 산자락에 훌륭한 학자나 대문장가가 많이 난다는 뜻의 필봉으로 보아야 하는지다.

대방제를 지나자 도로 오른쪽 콘크리트길 입구에 '병풍산 3.2㎞·천자봉 2.1㎞'라고 적힌 이정표가 있다. 흙으로 된 계단 길을 타고 오르며 등산이 시작된다. 산행을 시작한 지 50여 분 만에 주변의 조망이 확 터지는 첫 봉에 도착한다.

조망의 산답게 시계가 탁월하다. 왼쪽 전방으로 투구봉을 위시한 병풍산의 정상부가 철옹성을 쌓았다. 그 왼쪽 너머로 불태산과 지척의 삼인산이 우뚝하다. 뒤로 돌아서니 광활한 담양벌과 무등산이 뚜렷하다. 등산을 시작한 지 1시간이면 첫 번째 봉우리인 병풍지맥 천자봉에 다다른다. '天子峰 725m'라는 정상석이 있는데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옥녀봉이라 불리던 봉우리다. 오른쪽 동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분기한 산줄기에 투구봉과 용구산, 추월산 추월바위, 강천산이 조망되고 그 너머로 지리산이 아련히 보인다.

천자봉에서 투구봉과 병풍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빼어나도록 아름다운 능선이다. 남쪽의 전면 담양 쪽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형성되어 있고, 북쪽 장성 쪽은 전형적인 육산으로 묘한 대조를 이룬다. 아기자기한 등산로를 따라 넙적바위를 통과한 후 10여 분이면 철계단 앞에 당도한다. 철계단을 올라서면 무덤이 있고 곧이어 병풍산 정상이다.

병풍산에서의 조망은 오늘 등산의 정점이다. 북쪽의 정면에서 동쪽으로 백암산과 내장산, 추월산, 설산 등 호남정맥의 높고 낮은 무수한 산과 봉우리들이 이어지고 서편으로는 예전에 신선대라 불렀던 투구봉 너머 불태산이 뾰족하다.

병풍산 정상에서 내려서서 608m봉을 비롯해 봉우리 2개를 더 오르내리면 갈림길이다. 왼쪽은 용구샘과 만남재로 바로 내려서는 길이고, 직진은 한때 신선대라 부르기도 했던 암봉 투구봉과 대치고개로 가는 길이다. 페이스가 좋은 산객이라면 투구봉에 올랐다가 만남재로 내려서도 된다.(만남재로 가는 길은 자칫 지나칠 수 있으니 주의 요망) 가파른 길을 내려서다 보면 용구샘 가는 이정표가 있다. 용구샘은 높이 30m가 넘는 병풍암 아래에 있는 샘으로 입구보다는 안쪽으로 파인 모양이 마치 항아리 내부 같다.

굴 안쪽은 폭 3m, 높이 4m, 깊이 2m로, 고려 때 몽골군이 침입해오자 부녀자들이 이 산으로 숨어들었는데 아마도 이곳으로 숨은 게 아닌가 싶다.

만남재에는 산자락에 어울리지 않는 시설이지만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주막이 있다. 이곳에서 등산로를 선택한다. 삼인산을 연계할 것인지 대방제로 바로 내려설 것인지를 결정한다. 만남재에서 대방제까지는 약 45분, 삼인산을 연계하면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대방저수지에서 시작하여 천자봉·병풍산·투구봉·만남재(용구샘 경유)를 거쳐 대방제로 내려서는데, 약 8.5㎞의 거리에 4시간 정도 소요된다.

호남정맥의 훌륭한 조망처이자 암릉으로 이뤄진 병풍산은 엄밀히 말하면 담양과 장성의 경계 산이다. 높이가 826m로 지명도에서는 100대 명산으로 지정된 인근의 추월산(秋月山·731.2m)과 강천산(583.7m)에 비해 뒤지나, 빼어난 산세는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른다. 담양군 수북면 소재지에서 바라보면 왼쪽 투구봉에서 시작하여 정상인 깃대봉과 중봉 천자봉까지 고르게 뻗은 산줄기는 한눈에 보아도 틀림없는 바위 병풍이다.

대구에서 오전 7시에 출발하여 순수한 산행만 추구한다면 오후 7시면 돌아올 수 있다. 여유가 있다면 담양호 추월산을 드라이브 삼아 둘러보거나 담양 죽녹원을 들러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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