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라이온즈열정의30년] 이승엽 동점·마해영 역전포 "대구가 울었다"

입력 2012-11-12 09:16:05

<44> 한국시리즈 첫 우승 (중) 9회말 기적의 홈런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서 극적인 9회말 동점 홈런을 때려낸 이승엽과 이어 끝내기 홈런을 터뜨리며 삼성의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안긴 마해영이 환호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서 극적인 9회말 동점 홈런을 때려낸 이승엽과 이어 끝내기 홈런을 터뜨리며 삼성의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안긴 마해영이 환호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2002년 한국시리즈. 삼성 라이온즈는 LG 트윈스에 3승2패로 앞선 채 대구에 도착했다. 지긋지긋했던 한국시리즈의 저주를 끝내기까지 단 1승 만 남겨둔 삼성이었지만 1985년 통합우승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가을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기에 1승의 무게감은 선수들을 압박했다.

대구서 시작해 잠실을 돌아 다시 온 대구. 저주를 풀 '입맞춤'을 기다려온 팬들 역시 숱하게 지켜봤던 패배에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1월 10일 대구시민야구장에서 열린 6차전. 1승을 앞서고 있었지만 쫓기고 있다는 생각에 삼성은 초조했다. 또다시 진다면 7차전을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6차전은 삼성에도 최후의 전쟁이었다.

물러설 곳 없는 두 팀의 대결은 일진일퇴의 공방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끝을 장식한 매듭은 삼성에는 믿기지 않는 기적이었고, LG 팬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였다.

9회말 1사에 터진 두 방의 홈런. 졌다 싶었던 경기를 원점으로 돌리는 한 방으로 모자라 잇따라 터져 나온 끝내기 홈런. 7차례나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아야 했던 삼성이 그동안 꾹꾹 눌러놓은 울분과 환희를 토해내기엔 이보다 더 극적이고 기가 막힌 타이밍은 없었다. 한국시리즈 사상 첫 끝내기 홈런, 이는 한국시리즈 사상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최고의 명장면으로 지금까지 꼽히고 있다.

김응용 삼성 감독과 김성근 LG 감독은 전병호와 신윤호를 선발투수로 내세워 동상이몽을 꿈꿨다. 삼성 김 감독은 준비한 축포에 불을 댕기려 했고, LG 김 감독은 6차전을 잡고 승부를 최종전인 7차전까지 몰아가려 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두 선발투수는 1⅓이닝 만에 2실점 하며 조기 강판 당하며 두 감독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LG는 2회초 마르티네스의 볼넷 후 박연수의 희생번트, 이병규의 볼넷으로 만든 1사 1, 2루서 최동수가 불을 끄러 나온 배영수를 상대로 3점 홈런을 터뜨리며 앞서 갔다. 삼성은 곧바로 반격에 나서 2회말 1사 1루서 박한이가 신윤호를 상대로 2점포를 작렬시켰다. 2대3. 삼성은 3회에도 양준혁의 적시타로 3대3 동점을 만들며 양보 없는 혈전을 예고했다.

공방은 계속됐다. 4회초 LG가 조인성의 적시타로 다시 앞서나가자 삼성은 4회말 1사 후 3타자 연속 안타로 2점을 뽑으며 5대4로 역전에 성공했다.

6회초 2사 1, 2루. 김응용 감독은 1점차 리드를 지킬 비책으로 김현욱을 마운드서 내리고 노장진을 투입했다. 그러나 기회를 잡은 LG는 조인성의 적시타로 동점을 만든 뒤 대타 김재현이 2타점 안타로 단숨에 5대7로 승부를 뒤집어버렸다. LG는 숨 막히는 접전을 끝내려 애쓴 끝에 8회초 1사 1, 2루서 최동수와 조인성의 연속 적시타로 2점을 더 보태 5대9로 삼성에 4점차 앞섰다.

순간 삼성과 LG 두 사령탑의 머리는 7차전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떠올리지 못했던 대역전 드라마는 8회말 1사 1, 3루서 김한수의 우익수 희생플라이로 삼성이 1점을 쫓아가면서 작성되기 시작했다.

3점 뒤진 채 맞은 삼성의 마지막 공격. 선두타자 김재걸이 2루타로 공격의 포문을 열었지만 강동우가 삼진을 당해 남은 아웃카운트는 2개로 줄었다. 브리또가 볼넷을 골라냈다. 타석엔 이승엽이 들어섰다. 관중석에선 "홈런밖엔 없다. 승엽아 한방 쳐라"고 합창했지만 이전까지 이승엽은 20타수 2안타의 빈타에 허덕이고 있었다. 게다가 마운드에는 당대 최고의 마무리 투수 중 한명인 이상훈이 서 있었다.

3번의 MVP와 3번의 홈런왕, 시즌 최다인 54개(1999년)의 홈런을 때려냈고, 시드니올림픽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결승타를 치는 등 극적인 순간마다 터보 엔진을 가동한 그의 방망이였지만, 이 순간 또 한 번의 기적이 눈앞에서 펼쳐질 것이라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건 단지 욕심이었고 바람이었다.

"딱". 이승엽이 손을 치켜들었다. 공의 궤적을 쫓던 관중과 더그아웃을 지킨 선수들은 공이 펜스를 넘어갈 때까지 숨을 멈췄다. "와" 9회말 동점 3점 홈런.

엄청난 환호에 LG는 이상훈을 내리고 최원호를 올려 분위기 진정에 나섰다. 그러나 기적을 본 대구 팬들은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고, 이승엽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마해영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공 한 개를 골라낸 마해영은 두 번째 공을 파울로 걷어냈다. 방망이를 움켜쥔 마해영은 바깥쪽으로 향한 138km 직구를 밀어 쳤다. 공은 포물선을 그리더니 우측펜스 너머 105m 지점에 떨어졌다.

달구벌 밤하늘에 축포가 쏘아 올려 졌고, 마해영은 베이스를 돌며 끝내기 홈런의 기쁨을 만끽했다. 더그아웃을 뛰쳐나온 삼성 선수들은 3루 베이스를 도는 마해영을 홈까지 배웅했다. 마침내 '저주'가 풀리자 축제가 이어졌다. 대구는 그날 잠 못 드는 밤을 보냈다. 2012 한국시리즈 1차전서 결승 홈런을 때려내는 등 MVP에 오른 이승엽은 "비록 1차전 홈런이 9년 만의 국내 복귀를 화려하게 장식했지만 2002년 9회말 동점 홈런을 쳤을 때의 기쁨에는 미치지 못한다. 정말 평생 기억에 남을 멋진 홈런이었다"고 말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