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대비 상징 '원룸', '반값 세일' 애물단지로

입력 2012-11-12 09:56:53

은퇴자 앞다퉈 투자 '공급 과잉'…대학가 빈 방 절반 넘어

원룸이 남아돌고 있다. 5일 오후 대구 달서구 신당동 계명대 성서캠퍼스 동문 인근 원룸촌에는 원룸 월세 전단지가 곳곳에 붙어 있다.
원룸이 남아돌고 있다. 5일 오후 대구 달서구 신당동 계명대 성서캠퍼스 동문 인근 원룸촌에는 원룸 월세 전단지가 곳곳에 붙어 있다.

'보증금 50만원, 월세 15만원. 풀옵션.'

이달 5일 오후 계명대 성서캠퍼스 동문 주변 원룸촌에는 '원룸 세일'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곳곳에 원룸 월세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 공사 마감도 덜 끝난 한 신축 원룸에는 보증금 100만원, 월세 15만원, 풀옵션이라는 전단지가 10개 가까이 나붙었다.

노후 대비의 상징으로 꼽히던 원룸이 애물단지 신세가 됐다. 원룸 공급 과잉이 주된 원인이다. 불안한 노후에 대비하겠다며 금융권 대출을 받아 원룸을 지은 은퇴자들은 늘어나는 이자 부담에 허덕이고 있다. 원룸 위상 추락에는 은퇴자들이 앞다퉈 원룸 신축에 뛰어든 것이 직접적 원인으로 꼽힌다. 부동산업계도 원룸의 인기가 떨어진 데는 오피스텔 등 신형 주거시설로 트렌드가 바뀐 것도 한몫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계명대 성서캠퍼스 동문 주변 원룸촌에 붙은 전단지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봤다.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했다. 원룸 주인은 "매달 월세를 내도 된다. 월세를 20만원 정도로 하면 보증금은 내지 않아도 된다"고까지 했다. 인근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2년쯤 전부터 가격이 한꺼번에 떨어졌다"며 "부동산 중개소를 통하지 않고 직거래로 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준공 5년 미만의 신축 원룸조차 이런 사정이다 보니 지은 지 5년 이상 된 원룸의 공실률은 50% 이상인 경우가 상당수다.

은행에서 3억원의 대출을 받아 2년 전 경북대 북문 주변에 원룸을 지은 김상태(가명'61) 씨는 원룸 매매가가 7억원 남짓이라지만 도리어 은행에 월세를 내고 있는 셈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방 20개의 원룸이지만 임차하겠다는 이들이 10명 안팎에 그친다는 것. 지인들은 방 20개 정도로 월세 30만원씩 보증금 200만원 정도만 받아도 은행 대출을 갚고도 매달 300만원 안팎의 고정적인 수입이 생긴다며 원룸 신축을 권했다고 했다. 하지만 김 씨는 월세 30만원은 꿈도 못 꾼다고 했다. 김 씨는 "신축 원룸이라 해도 월세 25만원, 보증금 100만원으로 가격을 제시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적잖다"고 했다.

원룸이 쇠락의 길을 걸으면서 신형 시설을 자랑하던 고시텔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고시원처럼 소규모 공간에 살림살이가 가능하도록 구성된 고시텔은 원룸 임대 가격 하락에 덩달아 맥을 못 추고 있다. 고시텔의 경우 2005년을 전후로 월 30만원 이상에 임대차 계약이 성사됐지만 최근 들어서는 원룸 임차 가격 하락과 함께 20만원 안팎으로 떨어졌다.

이진우 부동산 114 대구지사장은 "오피스텔마저 임대차 경쟁에 가담하면서 직장인들이 오피스텔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며 "원룸 공급 과잉으로 또 다른 형태의 하우스푸어가 지속적으로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