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11월 7일, 프랑스 주재 독일대사관에서 3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총을 쏜 이는 독일계 유태인 청년인 헤르셀 그린슈판이었고 피살된 사람은 3등 서기관 에른스트 폼 라트였다. 그린슈판은 유태인을 박해하는 나치 독일에 복수하겠다며 이 같은 일을 감행했지만, 자신의 행위가 상상 못 할 비극의 빌미로 이용될 줄 꿈에도 몰랐다.
나치 정권의 선전국장인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보고를 받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유태인을 쓸어버릴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고 판단한 그는 유태인을 악의적으로 비방하는 기사를 선전매체에 도배하게 했고 테러를 사주했다. 이틀 뒤인 이해 오늘, 독일에서는 유태인에 대한 광란의 보복이 시작됐다. 무장한 돌격대, 친위대, 극우조직 등 나치 회원들은 유태인 상점과 예배당을 때려 부수고 불태웠다. 유대인 상점의 유리창이 깨져 떨어져 나가 어둠 속 거리에서 수정처럼 빛났다는 이유로 이 비극적 사건은 '수정의 밤'(Die Kristall nacht)으로 명명됐다. 100여 명의 유태인이 목숨을 잃었고 수만 명의 유대인이 집단수용소로 보내졌다. '수정의 밤' 이후 유태인들은 대거 독일을 떠났지만 이날 밤의 비극은 홀로코스트(대학살)의 서막을 알리는 전조일 뿐이었다.
김해용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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