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이야기] 사랑의 큐피드 우리 처제

입력 2012-11-09 07:12:37

요즘 우리 집 식구들은 저녁식사 후 부리나케 뒷정리를 하고 모두 TV 앞으로 모여든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주말 드라마를 아침에 케이블에서 재방송하는 걸 예약 녹화까지 해서 하루에 한 편씩 뒤늦게 보느라 정신이 없다. 평소 드라마나 예능에 관심이 없던 아내는 이 드라마를 알려준 처제에게 왜 이렇게 재미있는 걸 혼자 봤느냐며 애꿎은 원망까지 하면서 시월드 타령과 국민남편인 주인공 남편과 비교를 하면서 재미나게 보고 있다. 나도 심심하면 옆에서 보다 보니 이제는 아내와 같이 수다를 떨 정도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처제를 생각하면 참 여러모로 웃음이 절로 난다. 사실 아내와 나를 연결해 준 사랑의 큐피드가 된 이도 처제였다. 10여 년쯤 직장동료였던 아내와 나는 꽉 찬 혼기로 주위에서 여차하면 둘이 잘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듣고 있었다. 좀 쑥스럽기도 하고 해서 나름 아내의 생일을 D-데이로 삼고 여차여차 뜸을 들이고 있던 차에 평소 아내를 직장 앞에 태워주고 출근하던 처제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전에도 안면은 있던 사이라 인사를 하는데 그날 처제가 대뜸 "멋진 오빠가 오늘 저희 언니 집에 좀 데려다 주면 안 될까요? 오늘 제가 일이 있어서 언니랑 같이 퇴근 못 할 것 같네요." 이러는 거였다. 얼떨결에 "아~ 네" 대답을 하고 그날 이후 우린 자연스럽게 연인 사이가 된 것이었다. 과연 처제가 아니었다면 내가 그 D-데이날 정말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살짝 의문이 들기도 한다. 센스 있고 유머러스한 언변에 애들한테도 늘 인기 짱이다. "올가을엔 코스모스 한 번 못 보고 지나가겠네." 이 소리를 듣고 멋진 사진을 메일로 보내준 여동생보다 더 살가운 처제. 고맙게도 난 넝쿨째 굴러온 아내에 덤까지 얻은 것 같다.

이병국(대구 북구 구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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