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버버리찰떡

입력 2012-11-01 11:07:03

'꼬박 하루 걸리던 서울 유학길에 신문지에 말아 노모가 건네주던 떡…, 떡 할매가 힘들어하면 이발사도 한 말 치고, 순사도 한 말 치고, 채보도 한 말 치고, 초등학생 아들도 한 말 치고 학교에 가야 했던 우리의 떡'.

안동버버리찰떡 홍보 문구를 읽을 때마다 30, 40년 전 고향집 마당에서 어른들의 떡메질을 구경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친척 아재 아지매들의 걸쭉한 입담까지 곁들인 구수한 찰떡 맛이 아련한 추억 속에 되살아나는 것이다.

경주에 황남빵이 있고, 강원도 횡성에 안흥찐빵이 있다면, 안동에는 버버리찰떡이 있다. 안동의 정서가 은근히 배어 있는 버버리찰떡은 떡 이름부터 벙어리의 경북 북부지역 사투리이다. 한 입 베어 물면 두툼하고 쫄깃한 찰떡 맛에 말문이 막혀 벙어리처럼 된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버버리찰떡은 오래전부터 북한의 신의주 사람들이 즐겨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를 오가는 등 남북의 왕래가 많았던 일제강점기에 떡 만드는 방법이 안동으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버버리찰떡은 할머니들의 손길을 통해 안동의 떡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자 불황으로 떡집 문을 닫으면서 사라질 운명에 놓이게 됐다. 그때 할머니들을 찾아다니며 떡 만드는 비법을 배워 고유의 찰떡 맛을 계승하고 이를 안동의 특산품으로 만든 사람이 있었다. 서울의 유수대학 축산과를 나온 그가 버버리찰떡의 명맥을 잇게 된 사연 또한 애틋하다.

버버리찰떡은 불린 쌀을 쪄내서 쫄깃쫄깃하게 만들기 위해 떡메를 치고 먹기 좋게 일정한 크기로 잘라 앞뒤로 팥이나 콩고물을 넉넉히 묻힌 것이다. 어쩌면 단순하고도 원시적으로 보이는 이 제조과정에서 오히려 버버리찰떡 특유의 감칠맛이 나오는지도 모를 일이다.

상품화된 버버리찰떡은 이제 현대인들의 건강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버버리찰떡'이란 이름도 간고등어처럼 안동의 고유 상표가 되었다. 그 버버리찰떡이 수능시험을 앞둔 4일 특별한 행사를 펼친다고 한다.

안동 문화공원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찰떡을 나눠주며 수능 고득점을 기원하는 축제 한마당을 연다는 것이다. 첫 수확한 햅쌀로 만든 버버리찰떡을 먹은 수험생들이 찰떡처럼 두터운 성적을 내고 원하는 대학에도 찰떡처럼 쩍 붙는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