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저성장·고령화 시대, 일자리 다시 보기

입력 2012-10-31 11:13:42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침체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미국'일본'유럽 할 것 없이 일자리 문제가 세계 각국의 핫이슈로 부상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아마도 누가 집권을 하든 다음 정부의 최대 난제는 일자리 창출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으면, 일자리 문제도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자리'를 단순히 양적으로만 파악할 것이 아니라, 100세 인생을 살아갈 국민의 삶의 질이란 측면에서 구분할 필요성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좋은 일자리'는 주로 청년층에게 제공되어야 할 양질의 일자리로서,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으면서 장래성 등도 밝은 그야말로 '좋은' 일자리이다. 현재는 대기업과 공공기관, 공기업 등에서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대폭적인 일자리 확충은 결국 국민의 조세 부담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 경제성장을 견인해 왔던 대기업도 이제는 고용 창출이란 측면에서 그 역할이 제한적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지난 5년간 국내에서 1명을 고용할 때, 해외에서 4명을 고용했다. 국내 대기업의 글로벌화와 노사 갈등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대기업의 국내 일자리 창출 능력은 크게 줄었다.

따라서 좋은 일자리를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에서 창출해야 하는데 우리의 현실에서 사실상 어렵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대 재벌은 전체 계열사(638개)의 절반에 가까운 302개를 새로 늘렸다. 이 중 적자 기업이 207개나 된다. 42개 그룹의 내부 거래 현황은 2010년 144조 4천억 원에서 2011년 184조 9천억 원으로 28%나 증가했다. 재벌 2세나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50%를 넘는 기업의 내부 거래 비중은 28%로 지분 비율 30% 미만 업체의 13.1%보다 훨씬 높다. 재벌 2세나 오너 일가의 지분 비율이 높은 비상장 서비스업의 내부 거래 비중은 특히 더 높은 편이다.

이런 와중에, LG'삼성'롯데'SK 등 대표적 재벌은 청소 용역업, 의류 및 액세서리업, 슈퍼마켓, 고속도로 휴게소 사업 등에 진출하기 위해 계열사를 새로 설립하거나 편입시키고 있다. 45개 대기업 집단이 313조 원(10대 그룹 183조 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사내 유보금을 일자리 창출이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쓰는 것이 아니라, 재벌 일가의 사익 챙기기와 국내 중소기업 죽이기에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여'야, 좌'우 할 것 없이 모든 대선 후보들이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내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일자리 측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제 일자리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좋은 일자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생계형 일자리'이다. 하지만 공공근로로 대표되는 저소득층을 위한 일자리 정책에는 세련미가 더해져야 할 것 같다. 공공근로 때문에 중소기업이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한다는 푸념과 비판을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근로 능력에 따라 그에 어울리는 일감을 주도록 하는 노력을 함으로써 세금이 허투루 새는 것을 막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보람(가치) 있는 일자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보람 있는 일자리는 비록 보수가 많지는 않지만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일자리로서, 마을기업을 포함한 사회적기업과 사회 서비스 분야에서 많이 창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일자리는 부와 권력보다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신세대 청년층과 은퇴를 이미 시작한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를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이 노후 자금을 투입해 자영업에 나섰다가 5년 내 80%가 망하고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현실은 국가의 복지비 부담을 걷잡을 수 없이 증가시킨다. 사후약방문식 복지보다, 보람 있는 제2의 삶을 살 수 있는 일자리를 주는 것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훨씬 큰 실익이다.

이제 더 이상 대기업 중심의 고성장 패러다임으로는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저성장'과 '고령화'라는 키워드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상생'과 '공동체 정신'에 입각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립과 실천이 요구되고, 이를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이나 지역적 차원에서 리더십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는 선거를 통해 우리 스스로 '운명'을 선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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