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학생 1% 시대] <상> 5명 중 1명 다문화 학생 예천남부초교

입력 2012-10-31 10:36:15

"부끄러운 소수 아니죠, 이젠 당당한 한국인"

29일 예천 남부초등학교 1학년 다문화가정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손을 들고 있다. 이 학교 1학년은 전체 18명 중 4명이 다문화가정 학생이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29일 예천 남부초등학교 1학년 다문화가정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손을 들고 있다. 이 학교 1학년은 전체 18명 중 4명이 다문화가정 학생이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내년도 경북도내 다문화가정 출신 유치원 및 초'중'고교생 비율이 처음으로 1%를 돌파한다. 도내 다문화 학생은 내년도 4천460여 명으로 전체 학생 중 1.24%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학생 수가 꾸준히 줄어드는 가운데 다문화 학생 증가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다문화 학생 1% 시대를 맞은 교육현장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본다.

예천읍내에서 한천을 건너 2㎞를 걸어가면 전교생 170명의 예천 남부초교가 있다. 농어촌 학교로서는 적지 않은 규모인 이곳은 경북도내에서 전체 학교를 통틀어 다문화 학생 비율이 가장 많은 학교로 꼽힌다. 이 학교에서 5명 중 1명꼴인 다문화 학생들은 더 이상 '소수'가 아니다. 29일 예천 남부초교를 찾았다.

◆다섯 명 중 한 명이 다문화 학생

"토끼가 깡충깡충 뛰어갑니다."

29일 오전 예천 남부초교 2층의 '다문화실'. 교사가 문장을 읽자 교실에 혼자 앉은 5학년 장지성(12) 군이 한글로 받아 써내려 갔다. 엄마가 베트남 사람인 지성이는 형 지명이(14)와 지난해 9월 처음 한국땅을 밟았다. 베트남에서 평생을 산 아이는 한글은커녕 한국어로 인사도 못했지만 올해 3월 학교에 입학한 이후 빠르게 공부를 따라잡고 있다. 인턴 교사와 1대 1로 한글을 배우고, 5학년 1학기 수학 과정도 따라잡았다. 일주일에 8시간씩 맞춤형 수업을 한 결과다.

이 학교 강장원 교감은 "우리 학교는 다문화 학생이 많아 각국 문화를 체험하고 공부할 수 있는 다문화실이 따로 있다"며 "지성이는 원래 6학년 나이지만 중학교에 가면 학업이 뒤처질 게 걱정돼 국어 수업시간에 혼자서 한글과 수학 과목 1대 1 과외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부초교는 지성이와 같은 아이들을 위해 '귀국자 자녀 맞춤형 학력 향상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 프로그램은 부모의 결혼으로 도중에 한국에 온 '1.5세대' 다문화 학생들을 위한 것이다.

아이들을 돕는 인턴교사 이정숙(39'여) 씨는 "지성이가 한 번은 '시원하다'라는 말과 헷갈려서 창문을 열고 '아~서운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직 사회시간에 '청구권'처럼 어려운 단어를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일상 대화를 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배우는 속도가 빠르다"고 칭찬했다.

남부초교는 경북 전체에서도 다문화 학생의 수가 가장 많고 비율도 높다. 전교생 170명 중에서 30명(17.5%)이 다문화 학생이다. 일본이 10명으로 가장 많고 중국(7명)과 필리핀(9명), 베트남도 4명이나 있다. 작년에는 전교생 194명 중 31명(15.9%)이 다문화 학생이었다. 1학년 학생은 18명 중 4명, 유치원생은 15명 중 6명의 어머니가 결혼이주여성이다. 학년이 내려갈수록 전체 학생 수가 줄면서 다문화 학생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다문화 학생이 소수가 아닌 이 학교에서 아이들 사이에 '왕따'는 없다. 지성이의 단짝은 같은 반 최승호(11) 군이다. 승호는 엄마 아빠 둘 다 한국인이다. 승호는 "내가 선생님, 친구들 이름이랑 한국어로 인사하는 법을 다 가르쳐 줬다"며 깔깔 웃었다. 한종근 교장은 "자치단체가 주도적으로 농촌 총각과 외국인 여성의 결혼에 앞장서면서 이 지역의 다문화가정 비율이 높다. 이 때문에 어색함 없이 아이들끼리 잘 어울린다"고 설명했다.

◆편견은 없애고 학력은 쑥쑥

경북도교육청은 지난해 3월 이 학교를 '다문화교육 연구학교'로 지정했다. 다문화 학생들만 따로 분리하지 않고 일반 학생들과 통합 교육하는 것이 목표다. 담임 교사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다문화가정 학부모를 직접 찾아가 만나는 상담을 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일본어와 중국어 강좌를 방과후수업으로 개설, 언어와 문화의 벽을 낮추려고 시도하고 있다. 일본어, 중국어 강좌는 이중 언어 교육을 받은 인근 학교 '다문화 엄마'들이 맡는다.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성과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다문화 학생들의 학력 수준이 낮을 것이라는 우려가 사라졌다. 학교 측에 따르면 30명의 다문화 학생 중 3분의 2 이상이 학업 수준이 반에서 평균 이상을 웃돈다는 것. 한글이 서툴거나 기초학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돕는 방과후 '다솜이 튼튼 캠프'로 뒤처지는 아이들을 돕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익한 다문화교육 연구부장은 "엄마가 한국에 온지 5, 6년 밖에 안 되는 저학년들은 말을 제대로 못 배워 또래에 비해 말이 서툴고 수업을 이해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아이들이 처음부터 다른 학생과 학력 격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의 참여도 예전보다 적극적인 편이다. 한국말이 서툰 엄마들은 학교에 나오는 것을 꺼려했지만 방과후 학교 강당에서 풍물 교실을 열면서 다문화 엄마들의 커뮤니티도 생겨났다.

이 학교 5학년 자녀를 둔 일본 출신 오가와 카즈미(47'여) 씨는 "지난 스승의 날에는 학교 측의 요청으로 일본과 한국의 문화 차이를 알려주는 일일수업을 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엄마가 많으니까 아이들이 외국인과 문화 차이를 편견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참 좋다"며 웃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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