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에 병드는 세상] <하>중독자 치료 힘 모으자

입력 2012-10-31 10:58:21

"혼자 힘으로 못 끊는 수렁…'미션홈' 공동체로 재활의 꿈"

지난달 대구 중구 삼덕동 초대교회에서 뮤지컬
지난달 대구 중구 삼덕동 초대교회에서 뮤지컬 '미션홈'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한데 모여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우태욱기자

취재진은 마약 중독자들을 직접 만나봤다. 힘겨운 싸움 끝에 마약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사람도 있었고, 아직 마약의 유혹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처음 마약을 접하게 된 계기. 거의 대부분 '호기심'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순간의 유혹이 가져온 결과는 너무도 참혹했다. 마약을 끊기란 술'담배를 끊는 것보다 백 배, 천 배 힘들다고 입을 모아 얘기했다. 혼자 힘으로 성공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대구에서는 민간 단체를 중심으로 마약 중독자들의 재활을 돕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끈질기게 따라오는 마약

임정훈(가명'43) 씨는 한때 '조폭'이었다. 고교 때 친구들과 밤늦도록 어울려 다니다가 조직 선배들을 만나면서 이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마약을 처음 접한 것은 열아홉 살 때. "이거 한 번 해봐라." 선배가 건넨 필로폰 주사기는 그의 인생을 끝 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필로폰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가 속한 조직에서 선'후배에게 전화 한 통만 걸면 구할 수 있었다. 슬프고 힘들 때만 마약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기쁘거나 즐거울 때, 수많은 감정을 느낄 때 항상 마약이 떠올랐다. 필로폰 주사를 맞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았다. 임 씨는 "모든 감정을 마비시키는 느낌"이라고 했다.

임 씨는 서른 살 무렵 야구 방망이로 수백 대를 얻어맞고 조직을 떠났다. 그러면 자신의 삶도 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폭력의 고리는 끊었지만 마약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2001년 처음 경찰에 마약 투약 혐의로 붙잡혔다. 앞서 경찰에 붙잡힌 판매상이 임 씨의 이름을 댄 것. 그때 집행유예 2년,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임대사업을 하며 한 달에 수천만원씩 수익을 냈지만 마약에 대한 집착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2004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필로폰을 구했다. 한 번 필로폰에 손대면 끊기 어렵기 때문에 경찰의 눈은 항상 마약 전과자들을 향해 있다. 2004년 2월, 필로폰을 투약한 지 3일 뒤 경찰이 집에 찾아왔다. 소변 검사를 하자 마약에 '양성'반응이 나왔고 결국 투약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살았다. 임 씨는 교도소에서 마약 사범 6명과 같은 방을 썼다. 이들의 직업은 다양했다. 택시'버스기사, 평범한 직장인. 유일한 공통점은 한 번 손댄 마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마약은 그의 삶에서 뿌리뽑고 싶은 독버섯이다. 마약 전과 4범이라는 소문이 주변에 퍼지면서 거래처 사람들에게 신뢰마저 잃었다. 임 씨는 "마약 때문에 가족들과의 관계, 친구들, 자신감, 거의 모든 것을 잃었다. 내가 평생 싸워야 하는 보이지 않는 적"이라고 했다.

◆정부, 마약 중독자 치료는 뒷전

마약 사범들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마약 생산과 유통, 소지, 투약 등 모두 형사 처벌 대상이다. 투약자의 경우 최대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된다.

지난해 대구에서 검거된 마약 사범은 모두 251명으로 2006년(281명)과 큰 차이가 없다. 5년 전과 비슷한 수치를 유지하는 것은 한 번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때 필로폰에 손댔다가 어렵게 끊은 김모(42'여) 씨는 "스스로 마약을 끊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김 씨는 "성적 쾌락 때문에 마약을 접한 여자들도 있다. 교도소에서 마약 사범들끼리 몇 년간 수감생활을 하면 마약을 끊을 수 있지 않느냐는 생각은 마약이 얼마나 무서운 지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마약 중독자 치료를 위한 정부 정책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전국의 마약성 약물 치료전문기관은 모두 19곳. 대구의료원 등 전국을 통틀어 300여 개 남짓한 병상이 있지만 입원 치료를 받는 환자는 매년 줄고 있다. 2010년 231명이던 입원 환자는 지난해 81명으로 줄었고, 올해 8월까지 단 14명이 입원 치료를 받았다.

마약 중독자들은 단약(斷藥)에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기관들이 외면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20년 넘게 마약을 끊지 못하고 있는 한 투약자는 "마약을 끊고 새 삶을 살고 싶어 스스로 병원에 의사를 찾아가도 정신질환자들이 모인 입원실에 가둔 뒤 우울증 약을 주는 게 전부였다. 병원에 가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마약을 끊을 수 있겠느냐"고 털어놨다.

◆마약, 공동체로 이겨 낸다

정부의 소극적 지원 탓에 지역에서는 민간 차원에서 중독자를 돕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대구지부(대구 마퇴본부)는 2004년부터 '단약을 위한 라파교정교실(라파교실)'을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는 대구지방검찰청에서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를 받은 마약류 사범들과 스스로 찾아온 마약 중독자들이 재활과 치료를 받는다. 라파교실에는 정신과 의사, 검사 등 전문 강사 교육과 마약 중독자들의 회복 경험, 익명으로 서로의 고통을 나누는 시간으로 구성된 전문 회복 프로그램이 있으며 여태까지 110여 명이 거쳐갔다.

치료 효과도 크다. 2007년 대구지방검찰청 마약전담 한태화 검사가 '대구지역 마약류 예방 및 재활 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5년부터 3년간 대구지검에서 라파교실을 거쳐간 기소유예자 37명 중 재범자는 단 1명에 불과했다. 마약 사범의 재범률을 40%로 봤을 때 상당히 높은 치료 효과다.

대구에 라파교실이 생긴 것은 20대 임산부 마약 투약자 때문이다. 대구 마퇴본부 이재규 부본부장은 "실수로 마약을 접한 임산부가 검찰에 검거된 뒤 처벌을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그때 치료받은 임산부는 현재 건강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 지역사회가 중독자 재활과 치료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때부터"라고 말했다.

마약 중독자와 전문치료사가 함께 사는 '미션홈'이라는 임시 거주시설도 있다. 12명이 살고 있는 이곳은 행정기관의 예산 지원 없이 대구시약사회 후원과 대구 초대교회 측의 도움으로 운영되고 있다. 험상궂은 인상의 중독자들 탓에 한 아파트에서 주민 항의가 들어와 단체로 쫓겨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10년 가까이 마약 중독자와 이곳에서 함께 살고 있는 대구마퇴본부 조헌수 이사는 "마약 유혹을 느낄 때마다 옆에서 잡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들의 삶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약 퇴치를 주제로 한 뮤지컬 준비도 한창이다. '미션홈'이라는 제목의 이 뮤지컬에는 실제로 마약 중독 회복자 6명이 참여했고, 출연료 한 푼 받지 않고 '재능 기부'를 한 전문 뮤지컬 배우와 함께 호흡을 맞춘다. 뮤지컬 줄거리도 실제 마약 중독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구성됐다.

6년 전 마약을 끊고 이제 라파교실 치료재활팀장이 된 김명진(50) 씨는 "한때 마약에 빠져 지냈지만 라파교실에서 치료를 받은 뒤 완전히 회복됐다. 나 역시 혼자 힘으로 마약을 끊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뮤지컬을 통해 다른 중독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다음 달 15일부터 21일까지 예정된 공연 무대는 미국 로스앤젤리스다. 이 공연을 위해 두 달간 하루 12시간 씩 강도 높은 연습을 했다. 뮤지컬 미션홈 김도영(30) 기획팀장은 "로스앤젤리스는 자녀 교육 때문에 이민을 간 한인들이 많이 사는 곳인데 부모들이 생업에 열중하는 사이에 젊은 자녀들은 파티 문화에 빠져 마약을 접하고 무너진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대구 마약 중독 회복자들의 경험에서 우러난 뮤지컬이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기획취재팀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