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웃는다. 내가 원래 잘 웃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군가와 눈만 마주쳐도 환한 웃음으로 그들을 맞이한다. 지금의 나는 나를 웃음으로 맞아 주었던 선배 교사들을 닮아간다.
첫 발령지에서의 입학식 날, 나만큼이나 우왕좌왕하는 신입생 우리 반 아이들과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때는 왜 그리 모든 것이 생소하고 낯설었던지, 학생들과 대면하거나 이런저런 업무가 주어질 때마다 선배 교사들의 조언과 도움이 필요했다. 그 때마다 선배 교사들은 항상 웃음으로 맞아주었기에 묻고 도움을 요청하며 배워올 수 있었다.
2년차가 되었을 때 과학 발명대회에 나갈 학생을 지도해야 했다. 대학에서 전공 과목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배웠지만 발명 교육에 대한 것은 처음이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발명대회를 지도해 본 경험 있는 교사를 소개 받았고 그 교사들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부피가 큰 작품을 들고 이 학교 저 학교로 뛰어 다녔다. 발명 작품을 만들기 위해 생전 처음 북성로 공구 거리를 헤매고 다니며 필요한 부품을 구입하고 사용법을 배우러 다녀야 했다. 나에게 없는 능력은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 채우며 학교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생전 처음 연극을 지도하고 있다. 또 나에게는 없는 능력이 요구되고 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내가 필요한 도움을 부탁만 하면 모두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번 연극 지도를 위해 시립 극단에 기운차게 도전했지만 실패였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새로운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우연히 수업 시간에 내게 닥친 이 어려움을 이야기했더니, 우리 학교에 연극을 하는 학생이 있단다, 그것도 전문으로. 이때까지는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그 학생에게 찾아가 우리 아이들의 멘토가 되어 주기를 부탁했다. 시립 극단을 포기하고 대학 연극 동아리를 탐색하고 있던 때여서 우리 학교 학생에게는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드디어 연습 시간. 교내 대회에 참가한다고 우리의 멘토가 조금 늦게 도착했다. 바로 '돌아가며 대본읽기'를 시작하는데 그 진지함이 어른인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우리 아이들도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연습을 마치고 아이들이 하는 말이 "내 친구가 아닌 것 같아요"였다. 자기들이 보기에도 전문가 느낌이 팍 왔나 보다. 친구에게 배우는 친구들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나보다 앞선 친구의 모습을 보며 내가 더 앞서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만들어져가고 있었다.
교사 생활은 내가 잘 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해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부족한 능력을 채우기 위해 전화통에 매달리고 발로 뛰어 다니며 많은 분들에게 아낌없는 재능을 기부 받았다. 내가 지금까지 성취해 낸 일들은 나의 능력이 아닌 재능을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나는 오늘도 환하게 웃는다. 특히 후배 교사들과 학생들을 만나면 더 환하게 웃는다. 나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 사람들이 더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이제는 나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기웃거리며 도움 줄 기회를 노리고 있는 나를 본다.
박주미 경북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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