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타래 얽히듯 섬유가 맺어줬죠…DYETEC연구원 출신 '사내커플'

입력 2012-10-27 08:51:10

김홍제
김홍제'박주은 부부, 박성민'이경남 부부, 이도현'윤수진 부부(좌측 위부터 시계방향)는 서로를 너무도 잘 알기에 더욱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섬유연분?'

부부의 연은 하늘에서 맺어준다고 했던가. 하지만 하늘을 대신한 이가 있으니 이는 다름아닌 '섬유'.

DYETEC연구원(옛 한국염색기술연구소)에는 섬유가 이어준 부부가 많다. 섬유에 웃고 울다 보니 어느새 직장동료에서 가족이 됐다는 그들. 섬유에 웃고 우는 섬유인 부부 얘기를 들어봤다.

◆직장 동료에서 부부로

1998년 결혼한 김홍제(44)'박주은(44) 부부는 DYETEC연구원 제1호 사내 커플이다. 현재 한국패션산업연구원에서 신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홍제 씨는 DYETEC연구원에 근무하면서 박주은 선임연구원을 처음보자마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김 본부장은 "나는 2층에서 실험을 했었는데 실험 분석 업무를 1층에서 박주은 씨가 해줬다"며 "첫인상이 마음에 들어 실험만 하면 1층에 내려가서 분석해달라고 작업을 걸었다"고 했다.

김 씨 부부는 서로 마음이 통하자 6개월간 직원들의 눈을 피해 몰래 데이트를 했고 직원에게 발각(?)된 뒤 연인에서 부부로 발전했다.

김 씨 부부의 연애를 옆에서 지켜본 이가 바로 2호 커플 주인공인 박성민(40) DYETEC연구원 소재개발본부장이다. 박 본부장은 이경남(38'여) 디자인센터 미래전략팀장과 2001년 결혼에 성공했다. 박 본부장은 "김 본부장이 사내 연애를 한다는 것은 나만 알고 있었을 것이다"며 "몰래몰래 데이트하는 것을 보면서도 내가 사내 커플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본부장은 같은 건물에서 서울말씨를 쓰는 말끔한 얼굴의 이 팀장에게 마음이 꽂혔다. 김 본부장의 적극적인 구애로 둘은 커플로 발전했다. 2001년 1월 이 팀장이 DYETEC연구원을 떠났지만 이들의 연애는 계속됐고 같은 해 11월 결혼식을 올렸다.

1, 2호 커플은 부부 중 한명이 DYETEC연구원을 떠나 현재 한국패션산업연구원과 대구경북디자인센터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도현(35)'윤수진(35) 부부는 여전히 DYETEC연구원에서 얼굴을 맞대면서 근무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7년간 연애 끝에 2010년 결혼에 골인한 최장수 연애 커플이다. 이도현 전략기획실장은 "한 건물에서 모든 업무를 처리하다보니 서로 마주칠 일이 많아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연애를 오래한 이유를 물어봤더니 이 실장은 "서로 간의 재정적인 독립을 약속하는 조건을 받은 뒤 결혼했다"며 "매일 회사에서 만나는데 내 재정이라도 나 스스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농담처럼 말했다.

◆너무 잘 알아서…

'섬유'라는 이름으로 부부가 된 이들은 퇴근 후 가정 생활에서도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여느 부부와 다르다. 박'이 부부는 회사 일을 잘 알기에 업무 이야기를 집에서 멀리한다. 아내 이 팀장은 "퇴근 후 남편의 상태만 봐도 오늘 어떤 일을 했는지 눈치 챌 수 있다"며 "조금 피곤해하면 '보고서를 쓰는 시기인가보다'고 생각하고 연말 연초에는 '슬슬 발표 시기가 올 때가 됐는데'라고 으레 짐작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업무로 인해 부부싸움을 한 경험도 있다. 박 본부장은 "4, 5년 전쯤 공동으로 작업을 했는데 평소 서로 잘 알고 있는 성격이 드러나다 보니 자기 고집만 피우게 됐다"며 "공적인 부분에도 결국 사적인 감정이 개입이 되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현재 같은 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윤 부부는 집에서도 업무가 연장된다. 아내 윤 연구원은 "퇴근해서 집에만 오면 업무 보고하라고 한다"며 "잠자리에 누워서도 우리 부서 실적이 떨어지면 어떻게 할거냐고 물어볼 정도다"고 말했다. 남편인 이 실장은 "모든 부서의 상황을 알고 있는 전략기획실장으로서 아내 부서가 신경 쓰이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맞받아쳤다.

세 커플은 같은 섬유인으로서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의존하는 부분도 많다. 패션산업연구원에 일하고 있는 김 본부장은 "섬유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내가 많이 아내에게 의존하는 편이다"며 "원사에서부터 염색까지 패션은 모든 부분을 다 살펴야 하고 공학적인 기술에는 내가 뒤지기 때문에 조언을 많이 구한다"고 했다.

이 실장은 "최근 연구과제 수행으로 4억원 정도의 인센티브를 받은 적이 있는데 직원 복지에 쓰일 수 있도록 연구원에 기증한 적이 있다"며 "아내가 화를 낼 수도 있었지만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선뜻 동의를 하더라"고 말했다.

아내 윤 연구원은 "서로 회사에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잘 알고 있고, 도움을 주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며 "우리 부부를 포함해 동료들을 위한 일인데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이들은 앞으로도 같은 섬유인 커플이 계속해서 나오기를 기대한다. 박 본부장은 "아웅다웅 다툼도 있지만 그만큼 잘 알기에 재미난 일도 많다"며 "같은 업무를 하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 우리와 같은 이들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웃음을 보였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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