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보호색

입력 2012-10-26 11:03:36

중부 유럽에서 시베리아까지 북반구에 서식하는 들꿩은 한반도 중부 이북 지역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텃새다. 백두산멧닭이나 유럽들꿩, 초원멧닭 등 모두 18종이 들꿩과에 속한다. 다갈색의 깃털을 가졌는데 몇몇 종은 겨울철에 깃털 색이 하얗게 변한다고 한다. 북극곰의 하얀 털이 날씨가 풀리고 풀이 자랄 무렵 누렇게 바뀌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은폐색'경계색이라고도 하는 이런 보호색은 포식자의 눈을 피하거나 문어처럼 먹이에게 눈치 채이지 않도록 몸색이 바뀌게끔 진화한 동물의 생존 수단이다. 변색 동물인 카멜레온 등 파충류나 양서류, 갑각류 중 주변 환경의 변화에 재빨리 반응해 몸색을 바꾸는 동물이 많다. 산업혁명의 진원지인 19세기 영국 맨체스터의 사례는 생태계의 변색이 돌연변이나 우연의 산물이 아님을 증명한다. 당시 맨체스터에는 밝은 색의 나방들이 많았는데 어느 시점부터 어두운 색깔의 개체가 급격히 증가했다. 공장 매연 때문에 나무껍질이 검게 되자 나방들이 몸색을 어두운 색으로 바꿔 대응한 결과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보호색을 갖거나 변색하는 동물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도구를 쓰거나 무리를 짓는 습성을 통해 자신을 보호한다. 집단성이 바로 방어기제인 것이다. 이런 집단성을 공고히 하는 틀이 바로 제도와 문화, 종교이며 이념과 사상이다. 이질적인 문화나 종교, 이념을 배척하고 편가름하는 것은 자신과 무리를 지키려는 보호 본능이자 정체성을 확인하는 수단이어서다.

대선 정국에서 여야가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는 'NLL 발언'이나 정수장학회 문제 등 과거사 헤집기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서로가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필살기로 이런 약점 파기 전략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이번 대선 정국도 정책 대결보다 급소 노리기 판으로 변질한 배경에는 병풍(兵風)이나 북풍(北風)처럼 상대 약점을 물고 늘어져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우리의 후진적 선거 문화 풍토가 자리하고 있다.

어제 새누리당과 선진통일당이 전격 합당 선언한 것도 마찬가지다. 400만 충청 지역 표를 의식한 결과로 대선 승리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유권자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는 모르나 별로 신통한 수가 나올 것 같지 않은 두 당의 통합이 잡아먹거나 먹히지 않기 위해 재빨리 몸색을 바꾸는 동물의 보호색 작동처럼 비친다는 점에서 뒷맛이 영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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