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정수장학회 관련 기자회견에서 헛발질한 것 같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정수장학회가 고(故) 김지태 씨의 재산을 강압적으로 헌납받은 데 대해 사과하지 않고 장학회 이사진의 퇴진을 요구하는 선에서 입장을 정리하자 역풍이 불었으나 박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별로 흔들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박 후보는 큰 걸림돌이었던 과거사와 정수장학회라는 두 개의 험한 고개를 비교적 잘 넘어가고 있다.
박 후보가 잘 대처했다기보다는 보수층 유권자의 견고한 지지가 뒤를 받쳐준 탓이다. 박 후보로서는 자신의 기자회견 내용이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할 수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보였다가 지지층이 흔들리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을는지 모른다. 과거사 사과 때에도 보수 유권자층에서 일부가 반발하는 기류를 겪은 바 있다. 박 후보는 아직은 산토끼를 잡으러 나가기보다는 집토끼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박 후보의 지지율이 굳건한 만큼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지지율도 요동치지 않는다. 새누리당 쪽에서 문 후보에 대해 북방한계선(NLL) 공세를 펴고 있고 아들 취업 특혜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그의 지지율은 큰 변화가 없다. 안 후보에 대해서도 논문 표절 의혹 등이 제기됐지만, 의혹의 근거가 잘못된 것으로 지적됐으며 무소속 후보 한계론도 별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거친 네거티브 공세가 판치고 있다. 정수장학회 공방은 김지태 씨의 친일 행적에 대한 공격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친일파 공세로 맞불을 놓으며 번지고 있다. NLL 논란에 대한 공방도 그칠 줄을 모른다. 박빙의 판세에서 조금이라도 더 우위를 점하고 상대에게 타격을 가하려고 벌이는 진흙탕 싸움이다. 네거티브 공세를 자제하고 정책 대결로 가야 한다는 당위론은 현실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대선이 50여 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본격적인 대결은 아직 유보됐다고 할 수 있다. 야권 후보 단일화라는 큰 변수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단일화가 성사된다면 새로운 전단이 형성되고 판도 새로 짜야 한다. 그래서 지금은 어찌 보면 숨 고르기를 한다고 할 수 있겠다. 작은 전투를 치르되 상처를 최소화하면서 종반의 큰 격전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과정 역시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대선 후보들이 제시하는 정책, 여러 사안을 대하는 후보들의 견해와 자세, 후보 진영의 각종 주장 등이 유권자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견고한 지지층은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겠지만, 그중에는 마음이 흔들리는 유권자들도 있을 것이다. 유동적 지지층은 정책의 참신성과 현실성을 따지고 후보들의 가치관과 능력을 저울질했을 것이다. 후보 진영에서 내놓는 각종 주장에 대해서도 타당하다고 판단하거나 무리하다며 고개를 저을 것이다.
박 후보는 원칙을 중시하고 신뢰감을 주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박 후보의 원칙은 고집스러운 불통의 이미지로 연결되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과거사적 사안에 대한 그의 가치관 역시 좋은 점수를 받기는 어렵다. 여러 현장을 다니면서 하는 말들도 알맹이를 담기보다는 원론적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문 후보는 노무현 정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애쓰지만 쉽지가 않다. 정치 쇄신을 비롯해 여러 정책을 이야기하지만, 그의 능력은 여전히 의구심에 싸여 있다. 안 후보는 참신하지만, 불안하다. 그의 정치 쇄신 방안 중 정당 국고보조금 축소 제안은 역효과를 일으킬 것으로 지적받고 있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승부에서 진행 중에는 알지 못했던 미세한 차이가 나중에 승패를 가르는 요인으로 판명되기도 한다. 중간의 미세한 차이보다 중요한 것은 종반전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대선 후보들은 지금까지의 과정을 되짚어보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 변화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박 후보는 현실에 안주하다가 그르친 '이회창의 실패'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외연을 확대하려면 전향적 자세가 요구된다. 문 후보는 좀 더 강한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야 하며 안 후보에게는 안정감 있는 모습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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